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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27. 2022

어떻게 얻은 삶인가

# 후회하지 않을 환생을 위하여.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준단다, 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 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 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 (이운진, '슬픈 환생' 중)



꼬리를 잘라,


사람으로 태어나길 염원해준 주인에게 감사를. 혹시... 전생의 잔재가 남아 개를 닮은 사람이 있는 것인가. 자신의 지난 생을 기억한다면 개처럼 살지는 않을 터인데. 슬프게도 금생을 전생으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본다. 무의식 중에 나도 모르게 꼬리뼈를 더듬는다. 전생에서 내가 어떤 개였는지는 궁금하진 않다. 다만, 슬픔 속에서 꼬리를 자르고 나를 묻어준 주인의 기도에 부응하며 살고 있는지가 궁금할 뿐. 아 제발 함부로 살지 말자. 어떻게 얻은 삶이던가. 최선을 다해 금생의 나를 위해 살자. 후생에 내가 무엇이 되어 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전생 - 금생 - 후생>으로 이어지는 삼생(三生)을 완성할 수 있는지는 알 것 같다.



사람은,


살아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인 것이다. 전경린 작가의 산문집 '나비'에 있는 내용이다. 아 몰랐다. 전생에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부디 사랑하는 사람을 외롭게 하고 소홀히 했던 전생의 과오를 반복하지 말자. 더 이상 나를 내버려 두지 말자.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원했던 일, 그 사람이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하며 사는 것은 나의 책무. 세상 눈치 볼 여유 따윈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꿈 하나쯤 있을 터. 더 늦기 전에 그 사람의 꿈을 이루어 주자.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 내가 살게 될 얼굴을 위하여, 아낌없이 사랑하자. 그리하여 삼생(三生)의 고리를 완성하고 온전한 나를 바라보자. 





천상의 풍경을 보려면 새벽에 갔어야 하는데, 퇴근 후 광량 부족한 늦은 오후에 가 아쉬웠던 세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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