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숲, 사람의 숲.
인디언들은 자신이 힘들고 피곤해지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친구인 나무에 등을 기대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웅장한 나무로부터 원기를 되돌려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어리석지 않다.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중)
움직이는
생명은 움직이지 않는 생명을 떠나 살 수 없다. 우리는 그렇게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에도, 생명을 털어내며, 땅 밑으로, 때로는 땅 위로, 흙을 밟을 새도 없이 매일같이 이동한다. 그러다 몸에서 생명의 기운 다 빠져 버리면, 이기적이게도 움직이지 않는 생명 곁을 찾는다. 그리고는 등을 기대서서 이렇게 말한다.
"아. 여기 있으니 살 것 같다. 참 좋다. 기운을 주는 숲이 참 좋다."
바보 같은 움직이는 목숨들이다. 그들은 다시 힘이 나는 것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인 줄 모른다. 움직임을 멈추고, 비로소 본래의 자기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인 줄을 모른다. 멈춤의 아름다운 배열을 음악이라 부르듯이 우리의 삶도 멈춤이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다. 이제 그만 무의미한 이동을 멈추고, 꽃과 풀, 나무가 있는 움직이지 않는 생명의 숲에서 살아있는 삶을 살자.
숲에
들어가면 편안한 것은 나처럼 재주가 부족한 새가 있기 때문이다. 늠름하게 자라지 못한 볼품없는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하는 새들만 지저귀면 숲이 적막하다는 말, 공감이 간다. 아름답진 않지만 제가 가진 재능대로 노래할 수 있어야 숲이다. 사람 숲도... 똑같다. 웅장한 나무, 키 큰 나무, 잘 난 나무, 심약한 나무, 키 작은 나무, 못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작은 숲들이 모여 큰 숲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숲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 이상 어울림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인고의 세월을 밑거름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각자의 씨앗을 심고 애정을 갖고 보살피며 나무로 키워야 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 내가 있는 숲은 나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알자. 그러니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씨앗을 심으며 살기로 하자. 그들의 마음을 보살피며 나무로 키워내는 일은 보람 있을 것이다. 가끔은 씨앗을 심은 사실을 잊어버렸다가 저 혼자 쑥쑥 자란 나무를 만나면 참 반가울 것이다. 그렇게 잘 자란 나무들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로 와 숲을 이루면 얼마나 행복할까.
가만히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자, 나는 지금 울창한 숲 가운데 있는지. 혹여 황량한 사막은 아닌지, 척박한 들판에 서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에 나무를 심기나 했는지, 의도하지 않았지만 마음을 주기는커녕 원망을 심지는 않았는지. 이제라도 나무를 심으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