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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18. 2022

마음의 빚

# 빚 갚느라 바쁘다


개인이 은행에 돈을 예금하고, 은행이 그것을 다시 다른 곳에 투자하는 금융 중개과정이 매우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종종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잘 의식하지 못한다. 물론 사람들은 분명히 빚을 지고 있다.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중)



우리는 분명히 빚을 지고 있다. 


작년도 결산 기준 국가부채는 2,196조 4,000억 원으로 국민 1인당 갚아야 할 빚은 1,869만 원이니까 틀림없는 사실이다. 내 발로 은행을 찾아가 돈을 빌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갚아야 할 빚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납부해야 하는 주민세처럼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자본의 빚보다 더 무서운 빚이 있다. 


빚지고는 절대 잠을 못 잔다는 양심가라 할지라도, 사람들 속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 청산해야 할 은원(恩怨)이 빚처럼 쌓이게 되는데, 바로 마음의 빚이다. 따라서 같은 세월을 보낸 사람들에겐 같이 한 세월만큼의 마음의 빚을 갖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그렇게 된다.



한 번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내게도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있지 않은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소리 지르고 화냈던 순간들, 사랑한다 말하면 될 것을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마음 아프게 했던 시간들, 이유 없이 짜증내고 다투고 미워하던 어리석은 날들... 잘 대해 주어야지 하면서 그냥 지나온 세월들, 다 내가 지고 있는 빚이다. 상처도 빚이고 은혜도 빚인 것이다.



나는 이 부채를 더 늦기 전에 상환하리라 결심한다. 


이제는 그럴 정도로 마음에 여유도 생겼고, 젊은 시절보다 많이 너그러워졌으니까. 원리금 일시 상환이 어렵다면, 내게 허락된 남은 세월 전체를 쪼개 할부로라도 반드시 갚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나의 이 결의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 간 관계가 복잡 다양해짐에 따라, 누가 누구에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자본의 빚이 그러하듯이. 분명 갚아야 할 빚은 있는데 누구에게 얼마만큼을 갚아야 하는지 나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김은주 작가의 '빛이 되는 빚'이란 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귤 장수 할머니에게 귤 세 개 빚을 졌다면... 편의점 아저씨에게 웃음으로 갚아도 된다. 눈이 마주친 청년에게 웃음의 빚을 졌다면... 길을 묻는 아주머니에게 친절한 길 안내로 갚아도 된다.'


그래 이거다. 자본의 빚과 다르게 마음의 빚은 반드시 정당 채권자에게 갚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내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김은주 작가는 이를 빚을 빛으로 갚는다고 말한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추측컨대, 여기서 내가 갚은 빚이 빛이 되어 원래 갚아야 할 사람에게 전해진다는 뜻이리라. 빚을 갚는 것은 햇볕과 같아서, 어디에서 누구에게 갚더라도 햇살처럼 정당 채권자에게 내리쬐게 된다는 말이리라. 어쨌든 마음의 채무를 그렇게 청산할 수 있다니 정말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열심히 마음의 빚을 갚자.


우리는 반짝이는 햇빛 같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굳이 대상을 찾지 않아도 된다.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주변에 관심을 두기만 하면 된다. 환승 지하철역까지 안전하게 태워 준 기사 아저씨. 반갑게 먼저 인사해 준 다른 부서 사람들. 언제나 아프지 않게 살살살 PCR 검사해주는 여직원. 벚꽃 구경은 어디 어디가 좋다고 알려주는 친절한 앞집 사람. 평생을 오늘처럼 옆자리를 지켜주는 아내... 아, 오늘도 빚을 갚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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