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게 그을린 마음이라 한다.
글쓰기를 계획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책을 요약하는 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것도 글쓰기가 아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도 모두 글쓰기가 아니다. 글쓰기는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E. L. 독터로)
그렇다. 돈을 쓰는 것도 아니고, 글씨를 쓰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적는 것도 아니다. 글쓰기는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일까. 여기에 대하여는 예전에 <보고서 글쓰기>를 적으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말을 하는 걸까요? 글은 또 왜 쓰는 걸까요?
아마도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거나 받고 싶은 것은 마음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데 화려한 솜씨는 필요 없습니다.
“자 여깄어.”
“받아.”
물건을 건네듯 툭 던지면 되는 겁니다. 우리는 무엇을 이렇게 전달하지 않나요? 다소 시크하게, 진심을 전달하면 되지 화려한 포장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달랑 초코과자 하나 담긴 라면상자처럼 요란한 포장은 사람을 기망할 때 쓰는 겁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가진 것을 전하면 되는 겁니다. 글쓰기는 글쓴이의 마음을 읽는 이에게 전달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듯 글을 쓰는 것은,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마음을 나누고, 독서를 통해 작가의 마음을 공유한다. 그것을 위해 마음을 소리에 담은 것이 말이고, 글자에 담은 것이 글이다. 결국 글도 마음이고 말도 마음이란 얘기다.
김덕수 작가는 '말'을 '마음의 알맹이'라고 했다. '말'을 조금 길게 발음하면 '마알'이 되고, 이것을 다시 풀어 보면 '마음의 알맹이'라는 뜻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말의 내용이 결정된다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조금 늘여 쓰면 '그을'이 된다. 이것을 다시 풀어 보면 어떻게 될까. '그을'은 '그을다'의 활용형이고, 알다시피 '햇볕이나 불, 연기 따위를 오래 쬐어 검게 되다.'라는 뜻이다. 글은 마음이라 했으니, 결국 '글'이란 '검게 그을린 마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검게 그을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전하려는 간절함 때문에 그리 되는 것인데, 이렇게 멋을 부려 표현할 수도 있겠다.
마음을 벌겋게 달궈 종이에 찍으면, 순간 시커먼 연기 솟구치다 사라지고 검게 그을린 소름들이 목판화처럼 돋아나는데, 이것을 '글'이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틀어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결국 '마음'을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