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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29. 2022

낯선 전화

# 처음은 언제나 낯설다.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휴대전화에 찍힌 번호가 처음 보는 것이면 받지 않는다. 집에 사람이 찾아왔을 때 인터폰으로 슬쩍보고 모르는 사람이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돈을 꿔주는 인간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윤석미,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중)



처음 보는


전화번호로 낯선 노크소리가 들릴 때, 우리는 통화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때로는 낯선 사람이 아니어도 그렇다. 현관문 구멍으로 상대를 확인하듯 액정화면을 힐끗 보곤, 노크소리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문을 잠가 버린다. 애초에 전화란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만든 물건이다. 휴대전화는 이동하면서 듣기 위함이고. 그런데 왜 그러는 걸까?



처음은 늘


힘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롭게 나를 소개하고 상대를 파악해 내야 하는, 원치 않은 소개팅이 싫기 때문이다. 또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낯선 전화는, 낯선 사람과 낯선 용무로 익숙하지 않은 대화를 해야 하니까. 낯섦은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낯설었다. 낯설음으로 다가가 익숙함으로 친해지지 않았던가. 그리고 누구나 인생을 처음 산다. 우린 각자에게 낯선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자. 세상 모든 일은 다 '처음'이다. 그래서 인생을 '처음'들의 나열이라 하는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일을 처음 맡거나,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선택은 명백하다. 처음이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맡아야 하고, 용기를 내어 만나야 한다. 우리는 처음 보는 낯선 전화번호를 떨리는 손으로 누르고, 통화의 문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신호음 혹은 낯선 컬러링 소리를 인내하고 들으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노크를 계속한다.





민트색 정장을 입고 기다리는 공중전화에게 한 손에 전화기를 든 그녀가 낯설게 다가왔다,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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