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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Sep 29. 2022

내 편이 되어주는 책들

# 어떤 독서법.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당신이 일하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읽은 책의 권수만큼 뒤에서 저자들이 버티고 서서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사이토 다카시,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중)



가을이 오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책 읽기 좋은 계절은... 정말 놀기도 좋다. 사형 집행을 목전에 두고 안중근 의사는 다 읽지 못한 책을 읽을 5분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이처럼 죽음을 앞에 둔 절실한 책 읽기는 아닐지라도, 놀기 좋은 계절에 설렁설렁 한 권의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책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도대체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일까. 바보는 자기가 아는 것만을 읽고, 보통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읽고, 천재는 쓰이지 않은 글까지 읽는다고 했던가. 나는 활자들이 가리키는 지식이 아니라, 책 속에 스며 있는 작가의 마음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마 적지 못한 글과 차마 말하지 못한 말을 마음으로 읽어 내는 것이 어쩌면 독자의 몫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나를 찾아오는 일이라고 했다. 살면서 '나'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거나 또는 희미해졌을 때, 우리는 여행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찾아오곤 한다. 두고 온 나, 달아난 나, 웅크린 나, 나는 나,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우리는 더 많은 나와 함께 하기 때문에 성숙해지는 것이다. 내 안에 아군이 많아진 것이다. 책을 읽는 것도 여행과 같다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 속에서 내 편이 되어주는 이들을 만날 수 있고, 책 속의 낯선 여행지에서 수많은 '나'를 찾아올 수 있으니까.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읽은 책의 높이가 자기 키만큼 되면,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가 될 거라던 대학시절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 키 높이만큼 책을 읽으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고? 그 말이 정말인지 팩트체크를 해 본 적이 있었다. 결론은... 나는 아직 어느 분야에서도 최고가 되지 못했다는 것. 정확하게 58권, 약 940mm 높이까지 책을 읽다가 그만두었다. 뭐 배꼽 높이는 아니고 허리춤 높이까지 도달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떤 한 분야의 책을 읽지 않고,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손에 집히는 책들을 폭식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분야별로 보면 겨우 발목 높이나 기껏해야 무릎 높이에 그치고 말았으니. 교만한 마음에 현학적인 글이나 끄적이며 우쭐해하는 수준에서 도전을 멈추고 말았던 셈이다.



책 읽기를 통해 독보적인 존재, 최고 권위자의 경지에 오르는 9단계는 이렇다. 읽은 책의 높이를 잰 다음 각 단계별 높이에 도달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신장에 맞게 단계별 높이는 조정하면 된다.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으니 한번 도전해 보시길.



1단계 - 발바닥 높이(0mm) -- 그냥 평범한 보통사람. 빈 깡통 혹은 주워들은 몇 개의 돌멩이가 들어 있는 요란한 깡통이다. 알지는 못하지만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예단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책을 읽거나 찾아보기보단 사람에게 물어보는 타입. 언제나 묻기만 하는 짜증 나는 사람이다. 


2단계 - 발목 높이(90mm) -- 작심하고 대여섯 권 정도 읽었다. 모르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발목이 간질간질해진다. 자꾸만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증거다.


3단계 - 무릎 높이(420mm) -- 삼십여 권 정도 읽게 되면 이제는 무릎이 근질거린다. 막 뛰어다니고 싶은 기쁨을 맛보게 된다. 나 이만큼이나 안다고, 아는 체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동호회나 카페 같이 사람들이 모인 곳을 기웃거리게 된다. 어떤 분야에서 꽤 박식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 평가는 오래가지 않는다. 곧 무지의 벽에 직면하게 된다.


4단계 - 허벅지 높이(720mm) -- 이 정도 높이까지 책을 읽으면 잔망한 걸음걸이는 다소 안정이 된다. 이제 하체가 튼튼해지고 들뜨고 가벼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된다. 앎으로 나아가는 걸음걸이도 의젓해지며, 매사에 흔들리지 않고 판단함에 있어 진중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독파하는 능력도 생겨나게 된다.


5단계 - 배꼽 높이(1,050mm) -- 배꼽 높이까지 읽은 책이 쌓이면, 지식의 포만감에 밥을 먹지 않았어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된다. 속에 든 게 많으니 항상 든든한 것이다. 이제는 습득한 많은 지식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취향과 식견의 싹이 트는 시기이다. 한 분야 내에서도 유달리 끌리는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그쪽에 집중하게 된다.


6단계 - 가슴 높이(1,290mm) -- 여기까지 책을 읽었다면 가슴이 뿌듯해지고 그 분야의 모든 것에 대하여 자신감이 생긴다. 어디에 서든 누구와 만나든 넘치는 자신감과 박식함으로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거침없는 주장과 논리적 전개로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는 느낌을 풍기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논객으로 불려 다니는 경우도 생기는 단계이다. 


7단계 - 목 높이(1,500mm) -- 책에서 읽어낸 식견이 목까지 차게 되면, 비로소 겸손을 알게 된다. 함부로 말하지 않고 앎을 뽐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애쓴다. 가장 요란한 깡통은 빈 깡통이 아니라 한두 개 돌멩이가 들어 있는 깡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빈틈없이 깡통을 가득 채우면 아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처럼 목까지 세상의 많은 지식을 턱 밑까지 채우게 되면, 말하지 않아도 교감이 이루어진다. 이제는 말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8단계 - 입 높이(1,560mm) -- 이 경지에 이르면, 말의 품격이 달라진다.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가끔 툭 던지는 결정적인 한마디가 좌중을 감동시킨다. 말하는 순간 '결론'이 되어 버리므로,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판결문' 같은 말을 하게 된다. 경청으로 말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9단계 - 머리끝(1,740mm) -- 드디어 키만큼 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이제 그 분야에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당신은 주머니 속에 숨으려 해도 드러나고 마는 송곳이 되었다. 그 분야의 정상에 서서 만물의 이치를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존재가 되었다. 책 속에 숨겨진 작가의 마음을 키만큼 읽은 덕분에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고, 그들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축하한다.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른다. 책들이 사는 집에서 아이들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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