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에게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 '딸을 위한 시' 중)
때 늦은 눈 잠시 내린 날.
산책을 다녀온 딸의 손에 눈덩이가 들려 있었다.
눈사람을 만들겠구나... 생각했는데.
눈사람은 간 데 없고, 식탁 위에 닭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눈 닭이었다!
내 평생에 처음 보는 닭이었다.
관찰을 잘하는 예술가 딸아,
너는 늘 이렇게 우리를 놀라게 했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말도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나비'였으니.
도대체 '나비'란 말을 언제 어떻게 배웠더란 말이냐?
독립의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나만의 그림이 안 나온다고 화가 난 딸아.
지금까지 내가 무얼 했나 돌아보면 화도 나겠지.
하지만 딸아, 최선을 다 못했으면 어떠냐.
어차피 그림은 덧칠하며 완성하는 거잖니.
한 획의 붓으로 완성하는 인생은 없는 거야.
그러니 너 자신에게 화낼 필요는 없단다.
화가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란다.
화를 그림으로 푸는 사람이 되렴.
그리고 예술가 딸아,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란다.
네 스스로 붓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사람이 되렴.
우리 곁에 머무는 동안,
얼마 남지 않았을 그 시간 동안,
부디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내렴.
딸이 만든, 살찐 눈 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