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Dec 28. 2022

눈 닭

# 딸에게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마종하, '딸을 위한 시' 중)



때 늦은 눈 잠시 내린 날. 


책을 다녀온 딸의 손에 눈덩이가 들려 있었다. 

눈사람을 만들겠구나... 생각했는데. 

눈사람은 간 데 없고, 식탁 위에 닭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눈 닭이었다! 

내 평생에 처음 보는 닭이었다.

 

관찰을 잘하는 예술가 딸아, 

너는 늘 이렇게 우리를 놀라게 했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던 말도 '엄마'나 '아빠'가 아니라 '나비'였으니. 

도대체 '나비'란 말을 언제 어떻게 배웠더란 말이냐? 



독립의 시간은 가까워 오는데,

나만의 그림이 안 나온다고 화가 난 딸아. 


지금까지 내가 무얼 했나 돌아보면 화도 나겠지. 

하지만 딸아, 최선을 다 못했으면 어떠냐. 

어차피 그림은 덧칠하며 완성하는 거잖니. 

한 획의 붓으로 완성하는 인생은 없는 거야. 

그러니 너 자신에게 화낼 필요는 없단다. 

화가는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란다. 

화를 그림으로 푸는 사람이 되렴. 


그리고 예술가 딸아,

예술가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란다. 

네 스스로 붓이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사람이 되렴. 


우리 곁에 머무는 동안, 

얼마 남지 않았을 그 시간 동안,

부디 아름답고 행복하게 지내렴.






딸이 만든, 살찐 눈 닭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나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