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Jun 23. 2023

떡갈나무 그늘 아래

# 쉼을 구성하는 두 요소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장정일,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중)



나도


사철나무 아니 떡갈나무나 느티나무... 아니 아무 나무여도 괜찮다. 그냥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쉬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나무 그늘 아래 벌렁 누워 가시 같은 햇빛이 눈으로 쏟아져 손등으로 가리는... 콧등을 지나는 산바람 느끼며... 눈 감으면 풀내음 폴폴 가슴속으로 들어오고... 아 나도 나무 그늘에서 힘을 얻어 갔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다. 기계도 쉬지 않고 쓰기만 하면 닳아서 고장이 나는 법이다. 기계를 오랫동안 잘 쓰는 비결은 적당히 사용하고 적당히 쉬게 하고 때 맞춰 기름을 쳐주는 것이다. 이 정도면 나도 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사용한 것 아닌가? 톱니바퀴 안으로 기름을 쳐 주듯, 빡빡해진 내 마음도 윤활유가 필요할 듯. 이유 없는 짜증, 꼼짝 하기도 싫은 귀찮음, 그늘에 대한 그리움. 이러한 증상을 방치하지 말고 반드시 AS를 받자. 주말 동안 잘 정비하여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를.



산을 오르다,


지칠 무렵 그 길목에는 항상 주막이 있었고,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나무 그늘이 반드시 있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는 어김없이 휴게소가 있다. 쉬지 않고 길을 가거나, 쉬기만 하면 어느 경우에도 목적지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의 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달력에 표기된 파란색은 쉼표를, 빨간색은 빨리 쉬라는 경고이다. 가끔 공휴일이란 이름으로 추가되는 가운데 빨간색은... 경고를 무시하고 여전히 쉬지 않는 우리 같은 일 중독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선물처럼 찾아오는 가운데 빨간 날, 달력의 배려를 받아들이자.



문요한 작가는


'굿바이 게으름'에서 게으름과 여유를 이렇게 구분한다. 여유는 능동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고, 게으름은 선택을 피하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다. 여유는 할 일을 하면서 충분히 쉬는 것이지만, 게으름은 할 일도 안 하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것이다. 작가의 구분에 공감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 느림과 쉼이 필요하다고 말은 했지만,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느림과 쉼'이 '게으름과 여유'로 나뉠 줄이야.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게으름은 피곤하기 전에 쉬는 안 좋은 습관이고, 여유는 피곤한 가운데 숨을 고르며 내일을 준비하는 좋은 습관이다. 둘 다 느림의 형태를 띠지만, 여유는 일 속에서, 게으름은 일 밖에서 찾는다는 차이가 있다. 게으름은 쉬면서도 마음이 불편하고, 여유는 그렇지 않다는 점도 구별된다. 지금 나의 휴식이 게으름인지 여유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그럼에도... 여유보다 게으름이 더 탐이 난다.






딸 그림, 나무 그늘

매거진의 이전글 내 슬픔을 지고 가는 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