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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21. 2023

모습들

# 모습에 대하여


거울에 물체가 비쳤다 하여 거울 자체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도 아니고, 물체가 사라졌다 하여 거울의 무게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서옹 큰스님, '물 따라 흐르는 꽃을 본다.' 중)



거울에 비치는 모습


스님들의 말씀은 항상 알아듣긴 쉬운데 이해하긴 쉽지 않다. 흠... 모든 세상 모습은 거울인 나에게 잠시 비치고 있는 것뿐이다, 이런 뜻이겠지. 반대로 세상은 나의 모습이 투영된 거울이다, 라는 뜻도 있겠지. 잠시 거울에 투영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거울의 소유는 아닌 것이다. 거울처럼 내 눈에 비치는 것들을 가지려고 욕심내지 말자. 내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비출 수 있도록 나한테 묻은 세월의 때를 더 닦아야겠다. 거울은 언제나 진실을 비추어 주는 삶의 동반자라는 말이 있다. 세상이 거울이든 내가 거울이든 서로의 모습을 최선을 다해 비추며 살면 되는 것이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을 것이고, 세상이 웃으면 나도 웃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나는 거울 속에서 아름답게 늙은 소년의 모습을 기대한다. 비 그친 오후. 참 맑다. 이렇게 맑고 깨끗한 세상 모습을 비출 수 있어 넘 좋다.



잠든 모습


누군가가 미워지면 그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라고 했다. 자는 모습을 보면 절대 미워할 수 없게 된다고. 그건 맞다. 계속되는 부부 다툼을 뒤로하고 한 바퀴 도는 한밤중의 골목길. 그 차가운 바람 같은 미운 감정도 그 사람의 잠든 모습을 본 순간 녹아 버리고. 피곤을 안주 삼아 마시고 송장처럼 쓰러져 잠든 내 모습을 보고 아내도 그러했으리. 무장해제되어 잠든 모습은 상대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자신의 배를 드러내는 야옹이의 얻기 힘든 신뢰와 같다. 아 잠들어 있지 않아도 잠든 모습을 볼 때처럼 사람을 대했으면 좋겠다. 그런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 모습


보이지 않는다. 요즘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 통 나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내가 나를 볼 수 있어야 가족이 보이고, 동료가 보이고, 이웃이 보이고, 세상 사람들이 보인다는데. 이 세상의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한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2천 년 전 저 정북토성 안에 살았던 누군가도 그러했을까. 사진을 찍다가, 나를 세상 전부로 알고 있는 한 사람을 본다. 그에게서 세상의 일부이며 전부인 내 모습을 비로소 나도 본다. 내가 누구였는지, 내 모습이 어떠한지를.






딸 그림 -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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