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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ug 07. 2023

내 마음의 체

# 스트레스는 숭숭숭!


내가 구멍이 촘촘한 체를 가진 탓에 힘들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통과시킬 만한 작은 모래알이 내 마음속에 오랜 시간 동안 굴러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중) 



마음의 체


너무 촘촘하게 세상을 살지 말자. 나만 힘들다. 그저 남들처럼 숭숭 뚫린 마음의 체로 설렁설렁 살아야 한다. 다 내 마음의 체가 촘촘한 까닭이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마음속을 굴러다니는 욕심의 알갱이들, 모래알 같은 스트레스 알갱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병이 난다. 스트레스를 피하는 방법은 누가 줘도 안 받는 거라고 했던가. '받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주거나 보내오는 물건 따위를 가지거나 맡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주려고 하면 손을 뒤로 감추고 받지 말라는 뜻인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보다는 차라리 구멍이 숭숭 뚫린 체나 밑 빠진 독을 마음에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내 맘대로 못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 중 1위가 스트레스(stress)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스트레스'라는 말은 원래 19세기 물리학 분야에서 “팽팽히 조인다”라는 뜻의 'stringer'라는 라틴어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20세기에 이르러, Hans Selye가 ‘정신적 육체적 균형과 안정을 깨뜨리려고 하는 자극에 대하여 자신이 있던 안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에 저항하는 반응’으로 정의하였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그렇게 나온다. 스트레스는 한마디로 내 맘대로 하고 싶은데 못할 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저렇게 해야 할 때, 나는 이걸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해야만 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그럴 때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결국 나의 기대치에서 실제치를 뺀 것이 내가 받는 스트레스의 총량인 것 같다. 그러면 이 스트레스는 누가 가져다주는 걸까. 직접적으로 나에게 던져 주는 매개체가 있지 않을까?



사람이 스트레스를


들판의 떡갈나무, 화분에 핀 제라늄 꽃이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아무리 돌을 던져도 등굣길 내내 졸졸 따라오는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 잦은 고장 일으키는 고물 자동차가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는다. 스트레스는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나무나 꽃이나 동물이나 사물은 내가 어쩔 수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는 내가 어쩔 수 없을 때 받는 거라 했다. 이무석 작가는 '마음'이란 책에서, 포기할 걸 포기 못하는 것, 미운 마음을 갖는 것, 열등감을 갖는 것, 이 세 가지 스트레스가 사람의 정신에너지를 빼앗아 간다고 했다. 잘 생각해 보면,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욕심대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미운 마음이나 열등감을 가진 채 정신에너지를 빼앗기지 말자.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을 바꾸는 일뿐이다. 나의 기대치를 조금 내리는 것, 욕심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스트레스의 양을 줄이려 노력해 보자. 



생각 없는 말


말이 먼저 나가고 그 뒤에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세우기를 좋아해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말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다. 생각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말에는 어떤 '의도'('의심스러운 ' 해석)나 숨은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던진 말일뿐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와 비슷하지만, 거기에는 칼날처럼 위험한 요소가 없다. 그냥 바람처럼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말이라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사람들 말의 90%는 생각 없이 하는 말이라고 한다. 생각 없는 말에 상처받지 말자. 생각 없는 말을 붙잡고 쓸데없이 스트레스받지 말았으면 좋겠다.



스트레스 나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집 앞 나무에 스트레스를 걸어두고 들어간다는 어느 배관공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는 옷이나 신발에 묻은 흙 따위를 털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묻은 좋지 않은 감정이나 스트레스 따위를 제거하고 가족을 만나는 게 당연한 것이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 그것이 배려이고 사랑이 아닐까. 나도 집 앞이나 현관에 옷걸이나 자루를 하나 걸어 두어야겠다. 그래서 일과 사람들 또는 나 자신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거기 걸어두고 집 안으로 들어가야겠다. 물론 아침에 집을 나올 때 거기에 스트레스가 걸려 있으면 집어 들고 나와야 하겠지만... 그대로 있을까? 






딸 그림 - 가시덤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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