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글이 쓰여 있을까?
신의 책상 위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다고 한다. “네가 만일 불행하다고 말하며 다닌다면, 불행이 정말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또한 네가 만일 행복하다고 말하며 다닌다면, 행복이 정말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버니 시겔)
오 신이시여.
저는 지금 행복하답니다.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밀려드는 행복에 치여 어쩔 줄 모른답니다. 저는 하나의 행운을 찾기 위해 수많은 행복을 밟고 다니지도 않는답니다. 그러니 저에게 행복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한 번 보여주시죠?
클로버(clover)에,
러브(love)가 들어 있어 행운, 행복이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랑이 있어야 행운도 행복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유난히 네 잎 클로버를 잘 찾아내는 사람을 알고 있다. 목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기는 확실한 노후대책을 마련했노라 자신 있게 말하던 동료였다. 그는 길을 걷다가도 네 잎 클로버를 몇 개나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눈이 아플 정도로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분명히 그는 사랑(love)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의 재능을 설명할 이론이 없다.
사랑만이,
사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네 잎 클로버 찾기를 포기하고 우연히 앉은자리 옆에서 발견하게 되는 세 잎 클로버. 놀랍게도 꽃말은 '행복'이다. 네 잎짜리 '행운'에 비해 가치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클로버에 러브(love)가 들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어릴 적에는 집에서 기르는 토끼가 잘 먹는 풀, 토끼풀이었다. 토끼는 네 잎, 세 잎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다. 하굣길에 잊지 않고 뜯어다 주던 고사리 손에, 배고플 토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손에 사랑이 없으면 행운도 행복도 소용이 없다. 그냥 풀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가 사는 인생이다. 어떻게든 내가 정하는 게 당연한 거다. 하루를 어떤 기분으로 살지 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남들 기분에 흔들릴 필요가 없는 거다. 어제의 기분을 '행운'으로 정하고 로또복권을 샀다. 복권을 건네받는 순간 자동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분명 번호 하나는 맞을 것이다. 여섯 중에 하나 맞으면 대단한 거 아닌가? 오늘은 '행복'으로 정했으니까 분명 행복한 순간이 찾아올 거다. 무엇이든 정해 놓으면 그쪽을 신경 쓰며 사는 게 사람이니까. 교단 위에 걸려 있던 급훈처럼. 자, 내일은 어떻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