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은 모두 어둠 속에 있었다.
가장 빛나는 별을 보기 위해선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별을 보는 방법이다. 가장 큰 희망은 가장 큰 절망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한 아름다운 말들이 대개 어둠 속에서 탄생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 비밀은 모두 어둠 속에 있었다. (백영옥, '안녕, 나의 빨강 머리 앤' 중)
독일의 한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갱내에 갇혔다.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1주일 만에 구조되었는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 시계를 찬 광부였다. 불안과 초조, 걱정이 그를 숨지게 한 것이다. 사람은 마음으로만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과 폐 같은 장기로도 걱정을 한다고 한다. 불안과 걱정의 영향은 신체의 조직세포들과 장기에 나타나게 된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다들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운전을 하다 어두운 터널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게 되는 경험 말이다. 불안하고 초조한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본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어둠이 불안하기만 한 걸까? 낮과 밤이 공평하게 반복되어 온 이 세상에서 인류가 생존해 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낮과 밤, 빛과 어둠은 예측 가능한 사인 곡선처럼 수천 년 동안 반복되고 있다. 지금 내 주위가 어둡다는 것은 곧 밝아진다는 뜻이다. 지금의 불안도 한시적이란 것이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 휘~ 한 바퀴 걷자.
에스키모는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돌아선다고 한다. 돌아선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둔 채로. 어두워진 현실 때문에 불안해져 잠이 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 휘~ 한 바퀴 걸어보자. 한때 사흘 밤낮을 걱정만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번뇌의 밤으론 걱정을 해결하지 못했다. 우습게도, 지나고 보니 나만의 걱정이었을 뿐,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따라서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굳이 한다면 10분 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아두자. 두통 외에 몸의 장기들까지 아프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불안과 걱정은 감기와 같다. 약을 먹든 먹지 않든 감기는 낫는다.
어둠을 불평하지 말고 촛불을 켜자.
어둡다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이럴 줄 알았다며 불평하고 있을 때... 말없이 어둠 속을 더듬어 불을 켜는 사람이 있다. 회사도 사회이기 때문에 별의별 사람들이 모인 것이 당연하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 항상 바쁜 사람이 있고, 일의 시작만 하는 사람과 일의 끝만 하는 사람이 있다. 숟가락을 잘 얹는 사람이 있고, 불평 속에 제 할 일 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변의 진리는 '내 맘 같은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내 맘과 같은 사람은 결국 나뿐인 까닭이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누구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하자. 뱃머리가 산으로 향하고 있다면 돌려야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 들었다면 불을 밝혀야 한다. 공자님 말씀처럼 그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가면서, 집을 허무는 무리에 끼기보다는 집을 짓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