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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08. 2023

아내의 장바구니

#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면 동생과 나는 오로지 장바구니에만 관심이 있었다.

"엄마 내 운동화 사 왔어요?"  
"다음에 꼭 사 올게."
"운동화가 다 떨어져서 창피하단 말이에요."

엄마의 장바구니엔 우리가 쓸 칫솔과 아버지 속옷 그리고 우리 식구가 먹을 찬거리뿐이었다. 내 나이 서른이 되어 이제야 물어본다.

"엄마, 엄마가 쓸 것은 왜 하나도 없어요?"

(심승현, '파페포포 투게더' 중)



그러고 보니,


아내의 장바구니에 아내의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아 그걸 몰랐다니... 언제나 '1+1', '2+1'인 상품만 고집한다며 우리는 항의를 했다. 마트에 들어서면 유통기한 임박한 세일상품 코너로 직행하는 아내를 못마땅하게 여기기만 했다. 제발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핀잔만 주었지, 쇼핑카트 안에 아내의 물건이 하나도 없음을 우리는 눈치채지 못했다. 바보였다, 정말. 아내가 우리의 물건을 사듯, 우리도 아내의 물건을 챙겼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아내가 그랬듯 아내의 '아내'가 될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아내의 아내처럼 살 수 있을까. 평형을 이루는 것이 관계의 윤리성이라면 나는 친구의 친구, 동료의 동료가 되어 배려와 헌신을 돌려주고 있는지 짚어보아야 한다. 일방의 관계는 균형을 잃기 마련이다. 관계의 지속가능성은 '~보다'가 아니라 '~만큼'에 있는 것이다. 벌어들인 재물을 세상에 다시 돌려주는 사람들은 이를 알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감히,


아내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지 말자.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어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몰입되어 자기 자신을 잊고 사는 아내에게 주는 말. 가족을 위해 자신을 잊어버리면 분명 후회하는 순간이 온다고. 나는 아내의 장바구니에 아내의 물건이 들어 있기를 소망한다. 



'아내'란 말의 어원은,


'안'과 '해'가 결합한 낱말이며, '집 안의 해'라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제 우리 집은 잔뜩 찌푸린 날씨. 먹구름에 가려 해는 보이지 않았고, 가끔씩 비가 내렸다. 보일러를 올려도  춥기만 한 겨울 날씨였다. 나그네의 옷을 벗게 만드는 건 추운 바람이 아니라 따스한 햇살인데. 오늘은 우리 집 해를 웃게 만들어야겠다. 그리하여 집 안 구석구석 햇살을 뿌려 그늘을 박멸하고 봄날 같은 평화를 회복해야지. 아내가 옆에서 웃는다. 





우리에게도 저렇게 선명한 시절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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