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정>, 임지호 셰프를 생각하다
맛에도 연륜이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좋아하는 맛도 달라지고, 그리운 맛도 많아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네가 지금 찡그리는 그 맛도 그리워할 거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나이를 80으로 잡는다면 40년은 새로운 맛을 찾아 떠나는 탐험이고, 나머지 40년은 지금껏 경험한 맛을 기리고 추억하는 여행입니다. (임지호,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중)
어쩐지,
진한 청국장이 자꾸 생각나더라니... 어디 음식의 맛뿐일까? 사람 만나는 맛, 일하는 맛, 구경하는 맛... 세상의 모든 맛이 다 그럴 것이다. 인생의 정오를 훌쩍 지난 지금, 나도 새로운 맛보다 잊힌 맛들이 그리워진다. 지금껏 경험했던 맛들을 복기하고 있는 거겠지. 묵은지, 배추 전, 콩잎절임, 가죽나물부각 등과 같은... 고마운 사람의 시간과 수고가 양념처럼 들어간 오래된 맛들이.
어렸을 때,
엄마가 끓여주던 라면이 생각난다. 라면 두 봉지와 국수와 배추를 같이 넣어 면보다 국물이 더 많았던. 5월 8일이 다가오면, 왜 엄마가 만들어 주던 음식들이 생각나는 걸까. 라면이든 미역국이든 김치찌개든 누구에게나 한 가지씩 그리움의 음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만들어주던 그리운 음식 말이다. 이제는 흘러간 세월처럼 다시 먹을 수 없게 된 그리운 맛. 물만 넣고 끓이는 라면도, 엄마가 끓이면 세상 최고의 요리가 되었다.
마더 테레사가,
말했다. 빵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빵에 담긴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고. 그래 그런 거다. 빵이나 밥의 영양분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에 사랑이 들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허기져 사람은 살지 못한다. 화가 나 폭식을 해보지만 여전히 배고픈 것도, 실은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마음이 고픈 것이다. 출장길에 아무리 좋은 음식을 사 먹어도 헛헛했던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맛의 유무를 떠나, 나를 생각하며 고마운 이가 만들어 준 음식에는 사랑과 정성과 고민이라는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리운 맛이 났던 것이다.
거대한 건축물도,
실은 나무 하나, 돌 하나를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것이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다. 한 끼 한 끼 먹은 음식들을 연료 삼아 몸체를 구동하는 것이다. 입의 심부름을 다하다간 몸을 망친다고 했던가. 이제껏 혀와 입이 시키는 음식을 찾다가 병을 얻었다. 통풍으로 고생하더니 이제는 LDL과 혈압도 높아졌다. 자업자득이다. 기름진 음식이 나쁜 이유는 거기에 원한이 스며있기 때문이라 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단백질 속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음, 고기는 맛이 있을지 모르나, 원망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이 몸에 쌓이면 좋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병을 얻고서야 다짐한다. 앞으론, 한이 서린 음식보다 맑은 바람과 깨끗한 물, 그리고 햇살이 들어있는 좋은 음식을 먹자고. 다행히 사람의 몸은 3일이면 화학적으로 재구성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