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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17. 2023

눈으로 말하는 여인

# 과대상상 에세이, SF 에세이


남태평양 솔로몬군도의 어떤 마을 사람들은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벌채를 한다. 나무가 너무 커서 도저히 도끼로 쓰러뜨릴 수 없을 때, 그 사람들은 나무에 대고 고함을 질러서 쓰러뜨린다(내가 어디선가 틀림없이 읽은 기사 내용이다). 신통력을 가진 나무꾼들이 새벽이면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에 대고 갑자기 목청껏 고함을 지른다. 이런 일을 삼십일 동안 되풀이하면 나무는 끝내 죽어서 쓰러진다.
 
왜냐하면 고함이 나무의 영혼을 죽이기 때문이란다. 그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그것은 언제나 효험이 있다고 한다.

아, 이들 가여운 순진무구한 사람들! 정말 유난히 관심을 끄는 밀림의 관습이다. 아니, 나무에게 고함을 지르다니, 얼마나 원시적인가! 그들이 현대 기술과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최신장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안된 일이다.

난 어떤가? 아내한테 고함을 지른다. 전화기와 잔디 깎는 기계에다가도 고함을 친다. 또 텔레비전과 신문과 아이들한테도, 어떤 때는 주먹을 휘두르며 하늘을 향해 고함치는 사람으로도 소문이 나 있다. 이웃집의 어떤 아저씨는 자기 차에다가도 고함을 친다. 올여름 어느 날엔가는 오후 내내 사다리에 대고 고함치는 것을 들었다.

요즈음 도시에 사는 교육받은 사람들은 교통지옥과 엉터리 심판과 다달이 날아드는 청구서와 불친절한 은행과 조잡한 기계한테 고함을 질러댄다. 어디에서나 기계와 그 부속품들이 고함을 가장 많이 듣는다. 도대체 그런 짓이 무슨 소용이 있는지 난 모른다. 기계와 사물은 그저 그곳에 놓여 있을 뿐이며, 발로 찬다고 해서 알아듣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면, 글쎄, 솔로몬 군도의 원주민들이 그렇게 하는 데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산 것에 대고 고함지르는 일은 그 속의 영혼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지팡이나 돌은 우리의 뼈나 망가뜨리지만 말은 우리의 마음을 망가뜨린다.  

(로버트 풀검, '고함지르기' 전문)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인 '미키리크스'(MikiLeaks)가 1985년 사망한 미국의 작가이며, 에드먼드 유니테리언 교회 목사였던 로버트 풀검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에서 쓴 '고함지르기'라는 문건을 폭로하면서, 온 세상이 발칵 뒤집혔던 것이다.


이 문건은 인류가 지금까지 행해온 의사소통 방법이, 사실은 인류를 멸종시킬 수도 있는 극악무도하고 가장 위험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 소리로 의사소통을 했다. '말'이라 부르는 소리의 파동과 부가적인 몸짓이 인간의 유일한 대화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소통방법은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외부로부터 도달되는 소리를 귀에서 접수하여 고막을 진동시키고, 이 진동을 작은 세 개의 뼈인 이소골을 통해 더 깊은 곳으로 중계한 후 달팽이관이 전기적 신호로 변환하면, 비로소 뇌가 인식하게 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던 것이다. 그 결과, 사람의 말은 귀로 들어와 머릿속에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했다. 말한 사람의 의도와 다른 해석을 하는 인간들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도대체 말귀를 못 알아들어."

"귓구멍이 어떻게 됐냐?"


소통의 오류로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자주 목격되었지만, 정부도 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사람들은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과 지저분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고, 이러한 혐오스러운 세상에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입으로 말하지 않기 운동이 촛불시위처럼 확산되어 갔다. 결국 사람의 입은 생존을 위한 음식물 섭취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고, 용불용설 이론에 따라먹는 용도로만 발달하고, 말하는 용도로는 아예 퇴화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고함지르기,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리다


나도 어릴 때, 만취한 아버지나 저급한 선생님이 내지르는 말도 안 되는 호통과 고함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럴 때면, 콱! 죽어버리고 싶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것이 '고함지르기' 공격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고함지르기'의 무서움이 바로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망가뜨려 죽게 만드는 고함지르기. 얼마나 흉폭하고 음흉한 살인 수단인가. 나도 두려움에 치를 떨며 '고함지르기 금지' 법제화 요구에 찬성하였다.


또한 그동안 발생했던 숱한 사인불명 사건들이 설명이 되었고, 나와 같이 법제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정부도 더 이상 살인이 가능한 흉기를 사람들이 달고 다니게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총기 사용이 금지된 나라에서는 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진보 지식인들의 '입으로 말하지 않기'가 의회를 통과해 법제화되었고, 모든 국가에서 '고함지르기'는 물론 '입으로 말하기'가 금지되었던 것이다.




눈으로 소통하다


입으로 말하기가 금지된 이후,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금지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눈으로 말해요."


아기의 눈만 보고도 엄마는 아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연인들은 상대와 눈을 맞추는 것만으로 사랑의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조사관은 혐의자의 눈을 보고 그의 잘못을 밝혀내고 있었다. 그랬다. 인류는 이미 입을 대체할 유용한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눈이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의 눈에서 눈으로 연결된 통로, 눈과 눈을 이은 선, 바로 시선이다. 눈길이라고도 하는 그것이다. 그 길을 따라 사람의 감정과 의사가 전달된다. 그동안 잘 쓰지 않던 기능이지만 원래 인류는 눈으로 대화를 했다. 오늘날 무선통신과 방식이 유사하다. 눈으로 피사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되뇌면 그 말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텔레파시와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텔레파시는 눈을 맞추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이다. 과학적 지식이 미천하여 설명이 어렵지만, 눈길은 '보이지 않는 유선전화' 같은 것이다. 그게 무선 아니냐, 고 하겠지만 무선통신은 선이 없다. 아니 수많은 갈래로 수많은 선이 존재하는 거다. 하지만 시선은 오직 단선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일대일 통신이냐고 하겠지만, 일반적인 대면소통은 일대일 통신이지만, 다대일 통신도 불가능하진 않다. 사람의 시선은 '보이지 않는 유선'이기 때문에 찰나에 접속과 해제가 이루어지고, 여러 사람의 눈을 훑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접속 시간이 짧은 관계로 깊은 대화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시선, 눈길은 따스하기도 차갑기도 하다. 어떤 경우 날카롭기도 하며, 무디기도 하다. 가끔은 더러운 시선도 있어, 그럴 때면 사람들은 대화 도중에 시선을 돌려 거부의사를 표명하고는 눈을 감음으로써 그와의 소통을 단절한다. 비록 서로 눈은 맞추었으나,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할 때, 이럴 경우는 상대방이 알아채고 시선을 거두어 버린다.




어쨌든 눈으로 말하는 세상이 도래했다


이제는 거리에서 욕설을 하는 사람도, 아이에게 고함치는 사람도, 멱살 잡고 소리 지르며 싸우는 남자들도 모두 사라졌다. 그전보다 조용한 세상이 되었다. 물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세상은 아니다. 옛날처럼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도 하며, 머리에 꽃을 꽂고 혼자서 떠드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것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데, '입으로 말하기'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시킨 나라가 있는 반면, 사람끼리의 소통이 아닌, 대상 없이 혼잣말을 하거나 사물을 보고 혼잣말을 하는 경우는 허용하는 곳도 있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소통을 목적으로 사람과) 입으로 말하기'를 금지하였고, 귀로 듣는 행위까지 금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대화하는데 불편한 점을 극복하려 노력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많은 장애요인들이 해소가 되어갔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촉각을 보조수단으로 하는 대화기술, 즉 눈을 맞추는 대신 상대의 손을 잡아, 체온과 맥박 그리고 땀샘에서 분비되는 미세한 물질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아직 보조수단에 불과하지만 의사소통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을 국가차원에서 계속하고 있었다.


괄목할만한 성과는 사람의 시선을 저장하는 기술이다. 사람의 눈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을 때,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기술인데, 한 장의 사진에 얼마나 많은 용량의 '말'을 저장하는지에 따라, 나라 간 기술격차가 발생한다. 현재까지 한 장의 사진에 한 시간 대화하는 분량을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인류가 입으로 말하던 시대가 있었다는 내용을 교과서에 싣는 문제로 갑론을박하던 무렵이었다.


"이 여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서재에서 딸이 그린 그림 속 여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유난히 크고 또렷한 눈을 보고 있었다.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아냐, 이건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나는 고개를 저으며 책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딸에게 가져다주려고 그림을 집어 드는 순간, 그림 속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시선이 연결된 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충격이 내 머리를 때렸다. 마치 보가 터져 일순간에 쏟아지는 물폭탄에 맞은 것 같았다. 그 길로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 여인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글쎄? 아빠가 얘기해 봐."

"뭐 해? 아빠가 먼저 얘기해 보라니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서재에서 딸아이와 그 그림을 잡고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딸이 재촉하는 소리에, 잠깐 동안 어리둥절해하다가, 딸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만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왜 말을 안 해? 알고 있다며? 뻥 친 거지? 빨리 얘기해 보라고욥."


마침내 정신을 차린 나는, 딸에게 그림 속 여인이 말해 준, 입으로 말하기를 금지하고 눈으로 말하는 세상이 되었다, 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딸 그림 - 눈으로 말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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