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민감한 한 아이를 알고 있다.
새로 산 인형, 직접 만든 장난감 등 자신의 집에 들어온 새 물건 뿐만 아니라 이모집에서 만난 새 물건에도 어김없이 이름을 새로 만들고 잊지도 않고 다음에도 그 이름으로 불러주는 그 아이는 칠년간 내가 키웠고 요즘은 외로운 나를 위해 엄마라고 불러주는 내 가짜 딸, 조카아이다. 몇 해 전부터 나의 이름이 엄마로 바뀌었다. 여상스럽게 친엄마와 이모를 앉혀두고 이모에게 엄마라 부른다. 요즘은 나의 동심 친구이자 딸아이를 자초하는 그 녀석. 남편이 엄청 예뻐했던 그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 삼학년이 되었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애교를 떨며 여전히 우리집을 다녀간다. 가끔 나는 짖궃게 묻는다. '이모부 안보고 싶나?' 하고, 그러면 씩씩하던 녀석의 목소리가 모기만해 지면서 '보고싶지.' 하면서 내 시선을 피한다. 이모가 참 짖궃기는 하다.
어제는 사무실에서 키우는 새우의 사진을 보여줬다. 잘 알아보라고 일곱마리 중에서 한마리만 확대해 사진을 보냈다. 이름은 땅콩이라고 지어서 돌아온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요즘 웃을 일은 대부분 이녀석이 만들어 주고 있었구나 하고. 카톡방을 스크롤해 보았다. 규칙적으로 이모를 찾고 근황을 알려주고 이모집에 놀러오고 싶다는 희망을 표하고 있다. 내 주변에서 가장 변함없고, 내게 절대강자의 위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 명이다. 그 아이가 온통 붙여 둔 이름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어려운 것이 이름 외우는 일이다. 평생 상대방의 이름 때문에 곤혹을 겪기도 했으니 그것은 나의 크나큰 핸디캡으로 자리하고 있다. 아이도 이제는 굳이 내게 이름을 되묻지 않고 본인이 매번 알려주고 불러준다. 그러면 마치 그 물건이나 인형, 꽃 등이 생명을 달고 움직일 것만 같다. 덕분에 새우 한마리가 또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덕분에 내게 그 새우는 새로운 새우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머지 새우도 보여 달란다. 지난 번에 새우는 모두 일곱마리라고 얘기했었던 기억이 났다. 각도를 조절해 정성껏 사진을 찍어 보냈다. 조만간 다른 녀석들도 이름을 달수 있게되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아이가 내게 달아 준 엄마라는 이름처럼 불릴 때 마다 새우들도 행복하려나? 지어준 이름을 메모해 두고 가끔은 나도 불러줘야 겠다. 이런 게 그 아이의 사랑 표현 방식 일 것이고 생각보다 그런 사랑을 받는 다는건 기분좋은 일이니 나도 따라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