횟수로 13년, 민간 도서관에 인연을 맺고 봉사를 하고 정을 나눈지 횟수로 13년이 되었다. 길다. 어린 아들을 키우며 경험치가 부족한 엄마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소통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쳐왔다. 아이를 그곳에서 함께 키웠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대학생이 되었다. 긴 시간, 별의별 사건 사고도 많았고 내 기를 꺽는 일도 생겼다. 그럴때마다 한결 같이 옆에서 함께 슬퍼해 주던 그들 덕에 버텄지.
오늘은 어린이 날이다. 내아이의 어린이날은 엄마를 봉사라는 이름에 빼앗기고 혼자 행사장을 돌아다니다가 외갓집에 맡겨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아들은 어릴때 엄마의 시간을 빼앗는 도서관을 싫어했다. 우리가족의 어린이날은 도서관 봉사의 날, 빼앗기는 시간의 날일 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로 2년의 어린이날이 실종되었고 나는 새로운 삶의 재 배치로 그곳과의 시간을 잃어버렸다.
2022년, 드디어 어린이날 축제가 진행된다고 통보를 받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자원 봉사점수가 필요했고 당연하다는듯 도서관에서의 봉사자리를 요구한다. 뻔질나게 드나들며 초등학생때부터 엄마의 강요로 도서관을 통한 재활원 봉사 등을 다녔던 터라 요구가 당당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다. 그동안의 연륜이 있으니 작은 희망을 걸어본다. 어린이날 행사에 봉사자가 많이 필요하다며 흔쾌히 자리를 마련해 준다. 다행이다.
어린이 날이다. 성인이 된 아들은 짐을 나르고 부스를 맡았다. 엄마도 옆에서 덩달아 함께이다. 어리게만 느껴지는 아들이 못미더워 끝내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방법을 알려주니 곧잘 행사를 진행한다. 마냥 어리게만 봤더니 어느새 이렇게 자라 한 사람 몫을 하니 예쁘기도 하다. 도서관 사서 봉사자들은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을 반가워한다. 꼬꼬마 때부터 봤으니 정도 많이 들었던 이모들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는데 행사를 마치고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인 옛얼굴과 새얼굴들을 바라보니 새삼 울컥하는 기분이다. 좋기만 했던 생활은 결코 아니었다. 피곤했고 억지로 떠맡겨진 일도 있었고 그 와중에 즐겁고 의지되는 일도 많았다. 아이에 대한 걱정도 대부분 이곳에서 해결했었지. 그땐 그랬었지. 아니 지금도 나의 자리에 다른 걱정을 안고 다른 봉사자가 차지하고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겠지. 이곳은 그런곳이니까.
이제 나름 반듯하게 자라 받았던 배려를 돌려주려는 아들이 대견하다. 부스에 함께 앉아 있는 오늘의 나도 대견하다. 싫다던 아들을 꼬드겨 이 시간까지 견딘 나의 인내가 대견하다. 오늘 이곳에서 아들을 보며 성과로 마주하는 거 같아 아들도 나도 대견해 함께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그때의 배려나 희생이 이 시간을 빛나게 하는 것 같아 헛되게 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좀 칭찬한다. 나를.
내가 살아오고 있는 이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