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가는 미용실에는 터줏대감 애완견이 있다.
평소에 이 녀석은 나를 알은 채도 않는다. 일단 원장님 바라기로 졸졸 따라 다니고 옆집 가게 사장님의 고기 간식에 침 흘리며 꼬리를 살랑거리는 녀석이다. 가끔 지나가는 길냥이의 낌새에 목청을 높이는 이 가게의 마스코트이자 지킴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 냄새를 맡고 바닥에 배를 드러내며 발랑 눕는다. 목을 쓰다듬고 머리를 만져주니 좋아한다. 슬픔의 냄새를 맡았나? 나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진 모양이다. 깊게 밴 슬픔의 냄새를 맡고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내민 녀석 덕에 오랜만에 미소를 머금는다. 그러다 문득 귀찮아졌다. 슬픔은 온 몸속에 침투해 모든 것을 하찮고 귀찮게 만들고 있다. 요즘 나는 그렇다.
강아지를 보면 어김없이 남편이 생각난다. 남편은 개를 싫어했다. 아니 무서워했다. 신혼 초, 출근 시간이 이미 지나 걸려 온 남편의 전화. 남편은 사무실에 거의 도착할 즈음 길에서 큰 개를 만났고 무서워 도망친 건물에 갇혀있다는 연락이었다. 아직 밖을 지키고 있을 개가 무서워 건물에 갇힌 다 큰 남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사무실에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18년을 한결같이 개를 싫어한다는 변명을 하며 사실은 무서워했다.
그가 있는 납골당에는 오랜 시간 그곳을 지키던 흰색개 봄이와 가을이 그리고 얼룩모양의 강아지가 있다. 생전 짖는 법이 없고 성당 앞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걸어 다니거나 배를 깔고 엎드려 눈동자만 굴리며 방문객을 맞는다. 가끔은 온 산을 다니며 지킴이를 자처한다. 지난번 방문 때에는 남편의 납골당 옆에서 두 마리가 나란히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아! 남편이 무서워하겠구나. 아니 이제는 좀 친해졌으려나.' 괜한 걱정을 한다. 20년 남짓 알아 온 이 남자를 걱정하느라 쓸데없는 걱정만 늘었다.
"여보, 자기야,
그곳에서는 이제 개가 무섭지 않아?
저 녀석들 때문에 이곳에 숨어 꼼짝 못하는 건 아니지. 나는 이곳에 당신을 혼자 두고 가는 게 너무 걱정되지만, 저 녀석들이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배를 깔고 누워 당신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아 든든하기도 해. 적어도 외롭지는 않지.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어오던 전화가 끊기고, 당신과 나누던 농담스런 카톡 메시지가 사라지니 하루하루가 너무 외로워. 개를 무서워한다고 놀려서 미안해. 개가 하루종일 어슬렁거리는 이곳에 두고 혼자만 돌아가서 미안해."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더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