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삿말에 행복이라는 말을 넣고 나면 왠지 그를 위한 최대한의 축복을 해 준 느낌이 든다. 평소 '행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 단어를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사랑하는 모양이다.
오랜만에 책을 들었다. 행복의 지도,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개의 단어가 모두 있다. 행복과 여행, 참 좋은 단어이다. 생각만으로도 즐겁고 기대되는 단어다.
두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득 내 머릿속이 부산해진다. 내가 느낀 행복감이 언제였었지, 구체적인 사건이나 상황은 딱 한가지에 머문다. 뇌의 기억세포가 죽어버린 건지 그것만 기억하는 극히 나쁜 기억력의 탓인지 알 수 없지만, 뇌속에 각인된 것은 오직 한장면이다. 그날의 그공기와 느낌은 신기할 정도로 어제처럼 선명하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날이었고 비교적 날씨도 포근했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고, 왠일로 공부보다는 아빠와 웃고 떠드느라 쿵짝이 맞았다. 주방에서 이른 저녁을 준비하다 깔깔거리는 두남자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베란다창으로는 따뜻한 해거름의 저녁 빛이 길게 늘어지고 소파에서는 뒹굴며 몸장난을 하는 두사람이 보인다. 느닷없이 별안간 '아! 행복하구나. 이런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빙긋이 웃으며 한참을 쳐다봤던거 같다. 뇌 저장고의 정확도를 신뢰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세월에 따른 각색과 미화는 일정부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날의 각인이 꽤나 오랜시간 나를 사로잡았고 그것이 행복이라 의심치 않았으며,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오늘 문득, 책 표지의 행복이라는 글씨에 꽂혀 그날이 떠올랐다. 그 기억의 되새김질은 언제나 마음이 포근해지고, 아련해지던 심장의 따뜻함이었다. 그런데 왠 걸, 오늘은 다르다.
이거구나. 행복의 기억은 변하고 퇴색되기도 하나보다. 한사람의 부재와 그 부재가 만들어낸 아픔은 존재 자체를 변화시키는 거였다. 나는 결국 행복을 떠올리며 따뜻했던 그날의 잔상이 더는 따뜻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떠 오르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생겨난 바람골로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 그런 기억이 되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는 일부러라도 만들어 낼 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내 안의 행복이라는 단어는 소멸되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다. 아파서 울고 싶어지는 날,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날, 그래서 두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 버렸다. 나는 무엇을 찾고자 이 책을 선택했던가, 눈과 손이 원망스러운 날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프고 슬프구나 깨닫는다. 요즘의 어느 날과도 다르지 않는, 버텨야 하는 평범한 하루, 어제와 같은 오늘이다.
내일은 아니면 모레, 글피쯤에는 다시 소소한 것에서 행복이 문득 보였으면 좋겠다. 아직은 살고 싶으므로. 그러므로 나는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을 기대한다.
그래도, 오늘은..,
행복도 변하는 것이라 여전히 잃어버린 행복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