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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by 완뚜

삶은 바쁘고 고단하다는 핑계를 남발하며 살았다. 결혼하고 집을 구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아이를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목표 의식만 뚜렷했다.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하고 가족은 화목한 날을 이어 가기를 소망했다. 지지 않겠다고, 다 이룰 수 있다는 목표 지향형 삶은 옆길을 돌아볼 여력이 없기도 했다. 그 많은 소망 어디에도 부모님을 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그저 다 평안하리라 근거 없는 자신감만 가득했다.

‘울보 짤보’라 부르며 웃으시던 아빠가 돌아가셨다. 남편을 보내고 슬픈 딸에게 5분 이상 울지 말라며 심장에 병이 생기면 안 되니 쉬었다 울라고 당부하시던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빠의 당부를 무시하고 계속 울었다. 펑펑 울다 문득 그 당부가 생각나 더 눈물이 났다. 지금쯤 먼저 간 사위를 만나 그렇게 가는 법이 어디 있냐며 혼내고 계실까? 둘의 안부가 무척 궁금한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에도 병가로 하루를 쉬지 않던 사람이 점심쯤에 조퇴하고 돌아왔다. 뭘 잘못 먹었는지 배가 아프다며 밤새 앓던 남편은 새벽 응급실 입구에서 쓰러졌다. 병명조차 모른 채 그렇게 떠나보냈다. 남편을 잃은 딸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아빠는 식사도 거르고 자꾸 엄마를 시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딸이 죽을까 겁이 난 아빠는 조금만 울라고, 그러다 병난다고 매번 엄마를 닦달했다. 아빠의 가슴에 못을 박은 딸은 그래도 살아남았다. 홀로서기를 하느라 여전히 부모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다. 아빠는 수술과 회복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소식은 딸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사는 게 바쁜 딸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만 믿었다. 핑계처럼.

간경화와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은 아빠의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 간경화에 의한 선망 증상은 상상보다도 더 당혹스러웠다. 낮에는 언니가 오가며 함께 간호를 하지만, 저녁 시간은 오롯이 노모 혼자의 몫이었다. 다행히 나는 남편이 없고 아이는 군 복무를 앞두고 있었다. 결단은 빨랐다. 집을 정리하고 살림은 시댁 창고에 맡겼다. 옷가지만 정리해 부모님 집으로 들어왔다. 이별의 시간도 없이 보낸 남편이 못내 아쉬워 아빠와는 이별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이기적인 심정으로 선택한 결단이었다. 아빠에게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몇 년만 같이 살고 싶다며 거짓말을 했다. 흔쾌히 불쌍한 딸을 받아주었다. 퇴근해 돌아오면 언니는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밤은 엄마와 나의 차지가 되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지만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가 더 컸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아빠는 선망이 오는 날이면 다른 사람처럼 행동했다. 선망에서 돌아온 아빠는 매번 미안해했고 자책으로 풀이 죽었다. 어쩌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손 박자까지 맞춰가며 노래를 불렀다. ‘홀로 아리랑’을 4절까지 부르던 그날은 특히 좋아 보여서 나는 슬그머니 옆에 앉아 노래를 들었다. 본인의 병을 모르던 아빠는 참 행복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홀로 아리랑’을 핸드폰에 담았다. 웃음이 나는데 눈이 따갑다. 남편을 보내고 그의 목소리가 그리워 일주일 동안 사진과 영상을 뒤적였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아빠의 목소리를 남기고 싶었다. 서울에 사는 동생들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근황을 물어온다. 아빠를 잃어가는 슬픈 시간에서 우리는 누구도 자유롭지 못했다. “너는 옆에서 지켜보니 살만해서 걱정 안 한다.”라며 농담처럼 남긴 말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되었다.


햇살 가득한 날 납골당에 들르면 장서 간이 나란히 웃고 있다. 남편을 보낼 때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더니 아빠는 ‘오래 고생하지 않고 잘 돌아가셨다.’라며 서로를 위로한다. 그래 그러면 된 거다. 할 만큼 했고 덜 고통스러울 때 돌아가셨으니 되었다. 가족 모두와 작별의 시간을 가졌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질리도록 사랑을 고백했다. 하나뿐인 며느리에게는 너를 본 처음부터 사랑했었다는 고백도 했다. 가슴에 박힌 딸도 이제 걱정 안 한다며 ‘너의 죄를 사하노라.’로 들리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고 떠났다. 아빠는 매 순간이 사랑이었다. 그래서였다. 실컷 울고 나니 미련도 사라진다. 아빠와는 행복했던 추억이 가득하다. 고백하건대 할 만큼 했으니, 슬픔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서서히 무뎌질 것을 믿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일은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슴에 달고 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식의 이별도 결국은 아픔이다. 마음에 남은 생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오늘도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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