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게

by 완뚜

위령 성월이 시작되었다.
카톨릭에서는 한달 간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 남편이 있는 납골당이 있는 군위 묘원에서도 토요일만 있던 미사가 매일 아침에 있다.

첫날 아침, 새벽에 내린 비가 촉촉하게 내려앉아 더욱 쓸쓸한 아침이었다. 날씨 탓일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준비를 마치고 군위로 향했다. 일찍 출발했는데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남편에게 갔더니 비 온 뒤의 제단 앞은 어지럽다. 옆쪽으로 곧 새로운 분이 올 모양이다. 밑에 꽂아 두었던 조화가 모두 뽑혀 옆으로 치워져 있다. 덕분에 남편의 조화도 흐트러져 있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상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누가 올려 둔 꽃다발 때문에 빗물이 고인 제단 위의 물을 닦아냈다. 흐트러지고 뽑힌 꽃을 수습하고 한쪽으로 자리를 조정해 정리를 마쳤다. 생전에 좋아했던 홍시와 음료를 접시에 놓았다. 묘지에 술을 가져가라는 어른의 말을 나는 매번 무시한다. 마지막 날, 간도 손상됐던 것이 못내 걸려서 술은 가져갈 수가 없었다. 잠깐 남편 앞에 앉았다. 많은 사람이 임시로 준비된 야외 성전으로 향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지나는 사람마다 납골당 앞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힐끔거린다. 유일하게 나를 무시하는 생명체는 이곳 지킴이인 누렁이 봄이 녀석이다.


먼저 올라간 지인을 따라 야외 성전으로 향했다. 혼자인 나를 위해 기꺼이 따라나선 그녀는 함께 남편의 납골당 앞에서 기도를 바친 뒤 내게 시간을 주기 위해 먼저 성전으로 올라갔다. 성전에는 이미 사회적 거리로 간격을 유지해 플라스틱 자리를 배치해 두었다. 작년보다는 신자의 수가 적은지 자리가 많이 비어있었다. 오늘은 원로 신부님과 묘원 담당 신부님 외에도 두 분이 더 와 계신다. 미사가 시작되고 내게는 매 순간이 위기였다. 담당 신부님의 위로 한마디로부터 시작된 미사는 잔잔한 음성으로 죽은 이와 남은 우리를 위로한다.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이를 싸리 물고 참았다. 옆자리의 지인이 계속 훌쩍인다. 알고 보니 친정엄마도 40대의 젊은 나이에 혼자되었단다. 누구보다 이해하는 정도가 클 것이다. 꾹 참고 있는 내가 더 이상하려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든다. 남편 보낸 뒤의 모든 행동이 쉽지가 않다.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남편에게 다시 들렀다. "점점 추워지네. 금방 또 올게." 하고 돌아서는데 울컥 눈물이 쏟는다. 추워지는데 혼자 두고 돌아서려니 그가 붙잡는 것만 같다. 겨울의 길목에서 바람도 이리 차고 매서운데 비바람 그대로 맞는 이 공터에 그를 혼자두고 돌아가야 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싶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던 사람이 너무도 쉽게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평생 인정하지 못하고 미련을 떨게 될 것 같다. 울컥해서 돌아서 있는 나를 사람들이 지나가며 힐끔거린다. 이러지 않으려 했는데. 남편이 싫어할 텐데. 이제 잔소리해 줄 사람도 없구나.

돌아가기 싫어 발걸음이 무겁다. 그래도 돌아가야겠지.

"이제 자주 못 올지도 몰라. 그래도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