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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Sep 05. 2023

이발소 그림 속에 담긴, 낙원의 시절



           


그것은, 화려한 그림이었다.

바다 거북이 긴 목을 내밀고 푸른 바다에서 헤엄을 치고, 멀리는 이국의 나무들이 바람의 방향으로 쏠리며 서 있고, 하늘에는 검고 푸른 새들이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가고 있는 그림이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다윈의 발길이 닿기 전의 갈라 파고스 제도일까? 삼천 년쯤 살았다는 전설 속의 바다거북일까? 바다거북은 푸른 물살을 가르며 금방이라도  그림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았다. 얇은 비닐우산 위로 빗방울이 다다다 튕기는 와중에 내 귓가에는 철석이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큰 딸아이 다섯 살 무렵에 처음 간 아쿠아리움에서  처음으로 바다거북을 보았다. 대형 수족관에서 돌진하듯 헤엄쳐 오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큰 모습에 깜짝 놀라서 아이가 울었다. 그때까지 보았던 거북은 예쁘고, 온화한 성격의 그림책 속의 주인공들이었다. 아쿠아리움 유리 벽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서 본 노란색의 바다거북은 눈은 독수리처럼 매서웠고, 넓적한 노처럼 생긴 앞 발로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액자 틀이 다 부서져서 비를 맞고 있는 그림은 아파트 상가 앞 인도 한편 가로수에 기대어 있었다. 액자 속 푸른 바다 깊은 곳에는 화려한 산호초들이 알록달록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들과 뒤섞여 나뒹굴고 있는 낙원의 그림이라니.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 언제 적에는 무병장수의 기원이었을 이 그림은 어디서 온 것일까?


비 오는 주말 아침, 바쁘게 세탁기를 돌리고, 비름나물을 데쳐서 고추장으로 조물조물 무쳤다. 비름나물은 밭뚝이나 밭고랑 아무 데나 무턱대고 잡 풀들과 섞이면서  나던 흔하디 흔한 나물이었다. 건건이 가 마땅치 않을 때 텃밭에서 툭툭 뜯어 다가 고추장에 무쳐먹던 나물. 안동이 고향인 큰 형님은 결혼하기 전까지 비름나물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다른 풀들과 함께 뽑아서 버렸다며, 세상에는 못 먹을 것도 버릴 것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밥상을 차려 놓고, 사과 한 알과 ABC 주스 한잔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아직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이들과 컴퓨터 속 넓은 세상을 탐험하는 남편의 뒤통수를 거실 구석에 놓아두고 나선 산책길에 만난, 이발소에 걸렸음직한 그림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간 시골 동네 이발소에는 이국적인 그림이 걸려 있었다. 행복과 꿈을 멋지게 새겨서 적나라하게 펼쳐 놓은, 윌든의 호숫가 오두막 집 같은, 데이비드 소로가 살고 있을 법한, 지붕이 길고 뾰족한 오두막과 나무들 신비로운 호수의 풍경이, 중고등 학교 시절 암송 하고는 했던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에 어울릴 법한 고즈넉한 전원의 풍경이 있는 그림이었다. 펌프에서 물을 받아 커다란 조리개로 거품이 가득한 아버지의 머리칼을 헹궈 내는 모습을 보면서, 발이 닿지 않고 삐그덕 거리는 의자에 앉아서 알사탕 하나 물고 발을 까딱 거리기만 했다.

  

시골집을 지붕과 기둥만 빼고 다 허물고 새로 짓다시피 수리를 했을 때, 말끔 하게 도배를 마친 새 집 안방에 엄마는 읍내 시장에서 사 온 큼직한 그림을 걸었다. 멀리는 강물이 흘러가고, 바깥 마당 돼지우리에서는 새끼 돼지들이 커다랗게 길게 누운 어미 돼지의 젖을 찾아 바글거리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고, 안마당에는 암탉들이 모이를 헤집어 가며 쪼고 있는, 툇마루 위 제비 집에서는 제비 새끼들이 어미 제비를 향해 있는 힘껏 부리를 벌리고 있는 방 두 칸짜리 초가집이 있는 그림이었다. 엄마는 안방 벽 큰 조카의 돌사진 옆에 그 그림을 걸면서 두툼한 손으로 손자 쓰다듬듯 그림을 쓸어내렸다.

"옛날, 그때  청북 살 때랑 똑같지 뭐여"청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의 외가 동네다. 새 집 에서의 무탈과 행복을 기원하는 엄마의 염원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림 속에서 신혼 시절을 보았던 것이다. 토실토실 돼지를 먹여 새끼를 치고, 계란 한 꾸러미씩 장에 내다 팔고, 농사짓는 족족 알토란 같이 모아서 살림이 불어 나고 살림 느는  재미에 고된지도 몰랐던 시절이라 했다. 서해 바닷물이 밀려왔다 쓸려 나가면 바지락을 한 바가지 캐서 된장국을 끓였던 그때, 간척 사업으로 땅으로 바뀌기 전 그 바닷가, 네댓 살 언니가 있고, 갓난아기였던 내가 있고 동생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절.


엄마와 아버지는 신혼 생활을 엄마의 친정 동네에서 시작했다. 집도, 땅도, 엄마가 서울 할머니라고 칭하던 부자 친척이 가져다 시피 빌려 준 덕에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젊은 엄마가 서울 할머니 댁에서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아궁이에 불 때고 변변한 밥상도 귀하던 그 시절에 한눈에 봐도 고급 스마 런 테이블에 엔틱 한 의자에 엄마와 언니가 앉아 있었다. 부잣집 임에 틀림이 없었다. 아버지 같은 오빠가 있고 친정 엄마가 있는 자신의 구역에서의 꿈같은 엄마의 신혼 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처가살이를 청산하고픈 아버지의 결단으로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모은 돈으로 타 지역에 집과 땅을 사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사촌에게 사기를 당하고 집도 뺏기고 오갈 데 없는 상황에서 서슬 퍼런 큰 형님 집에서 더부살이를 시작하게 되어서 엄마의 고난의 시절이 펼쳐지게 된 것이었다.


나는 엄마를 지독히도 구박하고, 우리 형제들을 천덕꾸러기 취급 했던 큰 엄마를 어린 시절 내내 끔찍이도 싫어해서 매번 만나면 인사를 하지 않아서 싹수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며 자신을 꼬드겨서 처가살이를 청산하게 한 사기 꾼 사촌을 원망하고 원망하며 꿈길에서는 다시 그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잃어버린 낙원의 땅.


엄마가 읍내에서 사 온 그 그림은 아직도 텅 빈 고향집을 지키고 있다. 안방에서 뛰어놀면, 쇠죽 쑤던 아버지가 장단을 맞추듯 부지깽이 들고 뛰어와 호령하던, 부산스럽고 시끌시끌하던 아이들이 커서 떠난 집을 지키며 늙어 가셨던 부모님, 잠든 아이들을 뒷자리에 뉘이고 트렁크 한가득 온갖 먹거리들을 넘치게 싣고 고샅길을 돌아 나올 때 저 멀리 구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자 둘. 그때, 나는 아렸다. 어떤 끈을 매정하게 잘라 내고 나만의 세계로 떠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한때, 엄마를 그저, 불쌍한 헌신과 희생의 징표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 만큼의 나이가 되어 보니 엄마는 자신에게 다가온 자기 몫의 삶을 따박따박 살아낸 한 사람으로 다시 마주 하게 된다. 그 집이 비어 있어서 아팠고, 이제는 그 집을 잊고 사는 날이 많다.


나는 낙원의 시절을 살고 있다.

다리를 건너고 언덕을 오르며, 새끼 돼지들을 리어카에 싣고 오일 장에 나가는 엄마 아버지를 따라가듯.

그늘을 만나면 쉬기도 하고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기도 하며, 언덕을 오를 땐 리어카를 뒤에서 밀기도 하면서.

새끼 돼지들을 다 팔고 나면 엄마가 사주실 아이스크림과 알록달록 맛난 과자를 고대하던 아홉 살 그때처럼, 그 뒤를 쫄랑쫄랑 따라가며 긴 하루를 살고 있다.

엄마가, 보물찾기 하듯 길섶에 숨겨둔 힌트와 퍼즐 조각을 찾아 낙원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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