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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을 밝히는 이.

by 그방에 사는 여자


설날, 큰 형님네 식탁에 6명의 형님들과 수굿이 모여 앉았다. 큰 집, 작은 집 합쳐 8명의 형님들 중 두 분은 빠졌다. 한분은 일이 바쁘고, 한 분은 두 달 전 결혼한 큰 딸네서 모인다고 하셨다.

몇 년 전부터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추모공원에서 간단한 차례 음식을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고 점심은 밖에서 먹는다. 올해 점심은 갈비탕이었다. 집안의 가장 웃어른인 어머님께서 칼국수를 좋아하시어 줄곧 칼국수 집만 갔었는데, 올해는 갈비탕을 어디선가 맛보시고는 "맛있다" 하셨는가 보다. 점심 후 갈 사람들은 서둘러 떠나고, 남은 이들은 큰 형님댁에서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었다. 근처에 꽤 크고 유명한 카페가 있어 거기로 가자고 작년에도 운을 띄웠으나 나이 든 아주버님들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고작 과일 깎고 커피를 타는 게 싫어서가 아닌, 집 말고 낯선 곳에서 개인대 개인으로써, 대화를 나누고자 함이었다. 어쩌면, 사소함 조차도 욕심이었다.



결혼 후 맞이한 명절은, 말 그대로 노동절이었다. 막내며느리인 나는 서열이 제일 꼴찌였다.

있어도 없어도 표시도 안나는 사람이었다. 남편의 4형제들과 5명의 사촌 형님네 식구들까지 다 모이면 40명이 다 되는 식구들이 하루종일 먹고 마시다 보면 막내인 나는 설거지 통에서 헤어날 길이 없었다.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이야기를 나눠볼 겨를도 없이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다 돌아오곤 하였다. 저, 교자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반찬은 어떤 것인지, 주로 어떤 생각들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지 한담을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접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낯섦의 시간이 쌓이면서,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과 먹고 자고 씻는 것이 익숙해져 갔다.

식탁에서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시집살이 고충도 늘어놓고, 남편 흉을 보던 며느리들이 이제는 늙어서 손주들을 본 시어머니, 장모님이 되었다. 노안이 와서 눈이 흐려졌는지, 내 보기엔 그대로인 형님들이 할머니가 되어 간다는 게 영 믿어지질 않는다. 사위도 보고 며느리도 본 형님들은 더 이상 남편 험담도 시어머니 흉도 보지 않는다. 막내인 내가 가장 늦게까지 남편 험담을 하소연하듯 늘어놓았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재미없어서 그만두었다. 성질 별난 남편도 한 겹 한 겹 나이를 먹더니 유순해졌다.



식탁 위에는 특별히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이, 고만 고만한 자식들의 은근한 자랑과 걱정이 이어졌다. 아들을 결혼시킨 형님은,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고, 서른여섯 된 아들이 결혼 생각이 없어 걱정인 형님은 마흔만 안 넘기면 괜찮다 한다. 마흔일곱의 큰 딸이 4살 연하의 남자 친구를 만나는데, 자신한테 그렇게 잘한다는 큰 집 큰 형님의 자랑이 이어지자, 재혼하지 말고 자유롭게 연애하며 살라하라고, 애도 없으니 홀가분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오간다.



시집살이는 신물이 나도록 하고도 며느리는 손님처럼 어렵기 그지없는 시대이니, 불쌍한 세대라고 입을 모은다. 아들 결혼 시키면 정을 떼야한다는 큰집 넷째 형님 말씀에 아직 두 아들이 결혼 안 한 우리 큰 형님은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한마디 얹는다. '잘 못 들어온 여자'로 시어머님께 시집살이를 모질게 당했던 우리 집 큰 형님이 그리 말씀을 하신다. 이야기 끝에 두 딸을 결혼시킨 큰 집 막내 형님이 제일 행복해 보인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번 명절에도 성묘만 마치고 큰딸네로 온 가족이 다 모인다고 했다. 가족 단톡방에 사위들과 술잔을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니 행복해 보였다.


삶의 골목에는 그저 그런 넋두리들이 옹기종기 매달렸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은 골목들은 스러지기도 할라치면 서둘러 서로를 보듬어 주려는 듯 가깝다. 집집마다 환하게 밝힌 불빛들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누구든 찾아와 깃들라고 집집마다 불을 밝혔을까? 사람의 마음은 한 길로만 날 수 없기에 그것은 애초에 환상이다.

절박함은 아주 희미한 빛이라도 움켜쥐려 하거늘, 이렇게 환한 불빛에는 오히려 길을 잃을 것만 같다. 한지를 오려서 구겨 붙이고 색을 칠한, 견디며 늙어 가는 집들과 골목들, 불빛들을 끝없이 반복하여 그리면서 화가는, 새로운 길을 내고 등불을 아련하게 밝히는 치유의 과정에 있는 듯하다. 무람없는 환대를 바라는 불빛에 꿈결인양 취한 듯 걸어간다.



큰집 둘째 형님께서 푸짐하게 준비해 오신 제사떡과 소고기를 아홉 집이 나누어 담았다.

셋째 형님과 둘째 형님은 아직 학생인 두 딸들에게 용돈 봉투를 주었다. 나는 큰집 조카의 아들에게 용돈을 주었다. 어머님께 세배를 드리고 용돈을 드리니, 어머님께서도 덕담과 만원의 세뱃돈을 주셨다. 막내인 우리 식구에게는 말씀이 더 길게 이어졌다. 평생을 곁에서 모시고 사는 큰 아들 보다, 잔정 없고 까칠한 막내아들이 더 좋으신 걸까? 어쩌면 제집의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는 멀리 있는 이의 눈에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밤 등불을 밝히는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저마다의 우리이다. 우리가 얼마나 밝았는지 우리는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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