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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Oct 11. 2023

걷는 마음

걷다 보면, 단출해진다.

두 다리와 두 팔을 움직여 걷고, 들숨과 날숨의 고요한 리듬, 흐르는 물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풀벌레 소리를 , 그네를 타는 수양버들 잎사귀 사이에 언뜻 언뜻 비치는 따뜻한 볕을 보고 바람의 냄새를 맡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걸을 뿐.

겹겹이 껴입었마음을 걷어내고 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염없이 나는 걸었다   눈 오는 날은 눈을 소복이 맞으며 걷고 비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걸었다.



걷다 보니 즐거워졌

집에 가서 해야 할 일들과 만들어볼 반찬을  생각하며 걷기도 하고, 점심을 으면서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봐야지 하는 단순한 놀거리를 궁리하며 걷기도 한다. 일상의  동그라미가 걷기를 기점으로 돌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하루하루 두 시간씩을 걸었다. 그 시간이 4년이 어 간다. 오직 걷기만을 목적으로 걸은 시간.

얼마나 단출하고, 가벼운가.


레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 것이라고 했다.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 했으며,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고 했다.

걷기의 매력은 아마도 나아감과 돌아옴 아닐까? 더깨처럼 두껍게 껴입은 무거운 생각들을 하나하나 덜어내고 잊었던 기억을 반추해 보며 재생크림 바르듯 걷는다.


예전 고향집에는 커다란 괘종시계가 있었다.

엄마는 정오 무렵이 되면 "시계 밥 줘라"하셨다.

나는 괘종시계  유리문을 열고 밑에 놓여 있던 태엽을 구멍에 넣고 한참  감았다. 그리고 정오를 알리는 시보에, 시곗바늘을 12시에 맞추었다. 졸리고 지친 듯 힘없이 돌던 시계는,

한껏 배부르게 밥을 먹고는 똑딱 소리도 경쾌하게 돌았다.


내 인생의 시계는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걷기는, 정오의 시계 밥 주기이다.

많이 배부르게 먹고, 오후의 시간들을 명랑하게 똑딱똑딱 걸어가면 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하루를 축복 속에 보내고 싶다면 아침에 일어나 걸으라 했다.

어떤 순간에라도 나는 이번생을 완주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걷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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