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방에 사는 여자 Nov 05. 2023

"호박 푸레기 드시러 오세요!"

낮게 날던 잠자리가 제법 통통 해지고

힘찬 날갯짓하는, 무르익어 가는 가을날

담장 위나 외양간 지붕 위에 주렁주렁 매달린 호박들이 노랗게 익어가기 시작한다. 여름내 애호박을 된장에 지져 먹고 부쳐먹고, 그러고도  남아, 남겨둔 호박이 큼직하게 자라서 늙어 가며, 그렇게 주황색의 늙은 호박이 된다.

애호박 다음에 어른 호박이 아니고 왜 늙은 호박이 되었을까? 갑자기 궁금 해진다.

호박꽃은 주황색인데 무척 이쁘다. 호박꽃을 뜯어서 소꿉놀이를 하다 보면 손바닥에 주황색 꽃물이 들고는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돼지 한 마리 잡듯이, 크고 잘 익은 늙은 호박 두세 통을 따서, 반으로 갈라 속을 파내고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커다란 무쇠 솥에 넣고 강낭콩 한주먹, 소금  설탕을 넣고 푹푹 끓이셨다. 삭정이를 꺾어 넣어 불이 좋은 아궁이에 호박이 뭉근하게 익어 가면,  밀가루를 반죽해서 잠깐 덮어 놓았다가, 납작하게 뜯어서 수제비처럼 호박 푸레기 속에 넣고,  중간중간 긴 나무 주걱으로 저어주었다. 찹쌀가루도 넉넉하게 넣고 되직해진 호박 푸레기를 뭉근하게  계속 저었다.


호박 푸레기를 끓이기 전에 엄마는 나에게 동네 할머니들께 호박 푸레기 드시러 오시라고 말씀드리라고 하여서, 집집마다 돌며 할머니들께 "엄마가 저녁때 호박 푸레기 드시러 오시래요!"라고 말씀드렸다. 내 기억 속에 동네 할머니들은 여덟 분 정도 계셨는데 중풍으로 누우신 약국집 할머니는 엄마가 한 그릇 가져다 드리고, 용인에서 시집온 용인 할머니, 송탄에서 시집온 송탄 할머니, 옆집  민주네 할머니, 작은 오두막에서 혼자 사시는 대동 할머니, 서낭당 근처에 사시는 서낭당 할머니, 원댕이 할머니, 기름집 할머니, 몇 분은 굽은 허리로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 송탄 할머니는 내 어린 기억 속에도 허리가 곧고  키가 크시고 차가운 인상이라 대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할머니들께서 도착하기 전에 안마당에 멍석을 깔고 큰 교자상을 펴고, 모기 불을 피워놓고 전구 불을 환하게 밝혀 두었다.



열무김치와 싱건지가 전부인 반찬이지만 할머니들은 정담을 나누시며 호박 푸레기를 달게 잡수셨다. 첫 호박 푸레기를 끓이는 날에는  꼭, 동네 할머니들께 대접하셨던 엄마.

맛있는 고깃국도 아니지만 할머니들은 그렇게 우리 집에 모여서 익어 가는 가을을 나누시곤 하였다. 황금빛 노란색의 호박 푸레기는 식어도 맛이 있어서, 윗목에 덮어둔 상보를 젖히고 젓가락으로  밀가루 반죽만 콕 콕 찔러서 빼먹으면, 호박 맛이 달큼하게 베어 들고 쫄깃한 식감이 좋아서 자꾸  먹게 되었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계시지 않았다.

부모님이 결혼하시기 한참 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엄마가 가장 믿고 따랐던 할머니는 용인 할머니였다. 나도 용인 할머니가 좋았다. 할머니는 따뜻한 분이셨다. 그 집에서 아이들하고 놀다가 밥도 많이도 얻어먹었다.

그때는 남의 집에서 밥 먹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냥 놀다가 밥때가 되면 어느 집에서건 먹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이  커가며 중학생쯤 되어서는 서로 남자아이, 여자아이라고 머쓱 해져서 인사도 안 하고 지내다가,  스무 살이 넘어서야 말을 섞고 지냈으니 참 유치한 일이다. 용인 할머니는 내 이름 끝에 들어가는 'ㄹ'발음을  항상 'ㄴ'으로 발음하시곤 했는데 그 음절이 더없이 정답고 경쾌하다고 생각했다. 염색을 해서 검은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쪽을 지어 비녀 꽂고,  몸빼바지를 입고 계셨던 할머니께서 여름날 텃밭에서 풀 뽑으시다가, 덥다며  등목을 해달라 하시며 러닝을 벗으시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서 한 바가지씩 끼얹어 드리면 "어! 시원하다!" 하셨다. 내 나이 스물다섯쯤인가 용인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나는, 스무 살이 되어 집을 떠났다.

집이 있기에. 집을 떠날 수 있었다.

도시의 변방에서 따뜻한 불빛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허름한 자취방 담 너머에서 들리는 달그락 거리는 그릇 소리, 창문가로 새어 나오는

어느 가족의 대화 소리에, 허기진 하루 얹으며 살았다.



마트에 장 보러 갔더니,  늙은 호박이 나와 있었다. 한 덩이를 안고 와서 껍질을 벗기고, 잘게 잘라서 냄비에 넣고 뭉근하게 끓였다. 엄마가 해준 것처럼 밀가루를 반죽해서 수제비처럼 뚝뚝 떼어 넣고 찹쌀가루도 넣고 나무 주걱으로 저어 주며 호박 푸레기를 끓였다. 나에게는 호박 푸레기 드시러 오시라고 초대할 할머님들이 계시질 않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한 그릇씩 잘 먹었다. 아이들은 내 입맛을 닮았는지 쫄깃한 밀가루 반죽을 쏙쏙 빼먹는다.



집이 있어도 떠날 수밖에 없어, 그리워하던

내가 이제는 스스로 집이 되어간다. 엄마 계실 때 내가 끓여 드린 기억이 없는 호박 푸레기처럼,

익어 가는 가을의 늙은 호박처럼 씨앗들을 한껏 품은 채로 비어 가며, 비로소 집이 되어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팔뚝에는 화상 자국이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