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빙기 회수하러 왔습니다.”
파란색 조끼를 입고, 금색 배찌를 단 사람이 카페에 들어오면서 말했다.
“네?” 나는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아했다.
“제빙기 회수하러 왔다고요. 시청에서 왔어요.” 그는 배찌를 보여주며 말했다. 금색 배찌에는 ‘시청’이라는 문구와 함께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주방으로 들어오려는 듯이 주방 입구로 다가왔다. 나는 잽싸게 주방 입구에 막아섰다.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의도였다.
“제빙기를 가져간다고요? 왜요?” 나는 물었다.
“공문 보냈어요. 못 봤어요?” 그는 짜증이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예요. 위라고 한다면 국가이고요. 아무튼 제빙기를 모두 수거해오라고 했어요. 메일 확인해보세요.”
그는 나를 밀치며 주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견고하게 서 있었다. 외부인이 주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제빙기를 가져간다는 말도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금색 배찌를 달았다고 해도.
“일단은.” 나는 말했다. “무슨 일인지 내용은 알아야 드리죠.”
“이거 참, 정말 바쁜데.” 그는 귀찮다는 듯이 표정을 구겼다. 그리고 공구 가방을 바닥에 내려 두고 내게 말했다. “북극에 빙하가 심각하게 녹은 건 아시죠? 그래서 지구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도요.”
“네. 알아요.” 나는 어깨를 단단히 펼치고 서서 대답했다.
“그것 때문이에요. 제빙기를 회수해서 얼음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북극 복원 정책이에요. 이건 전국적으로 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저는 이번 주 내로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제빙기를 회수해야 해요. 아시겠어요? 여기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구요.”
“하지만 그러면 저희는 장사를 할 수 없어요. 제빙기를 그저 드릴 수도 없고요.”
“아직 심각성을 잘 모르시나 본데. 당신이 아무리 커피를 많이 팔아서, 먹고살만해져도 지구가 멸망하면 끝이라고요. 알아요? 코로나도 겪었잖아요. 장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아무튼 이번에 시작하는 북극 살리기 정책의 일환이니,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멈춰야 했다. 그가 짜증을 내면서 내 말을 끊었기 때문이다.
“저 무척 바빠요.” 그는 소리를 높여 말했다. “앞으로 회수해야 할 제빙기가 한두 개가 아니라구요.”
“그런데 그 정책. 효용이 있는 건가요.” 나 역시 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제빙기가 아무리 얼음을 만들어도 북극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요. 말도 안 되는 정책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안 그래요?”
“해보셨어요?” 그는 나를 쏘아보기 시작했다. “안 해봤잖아요. 안 그래요? 정책의 효용이니 상식이니 같은 식으로 불만을 늘어놓기 이전에 뭔가를 해보기나 했어요? 매장에 일회용 커피 컵이나 없애지 그래요. 가만히 서서 이렇네 저렇네 거리는 한심한 태도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요. 알아요?”
그는 주방으로 들어와 제빙기를 빼내기 시작했다. 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은 공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메일을 확인했지만, 공문은 없다고 말했다. 제빙기를 가져가는 게 무슨 말이냐고 사장님은 노발대발했다. 당장 카페로 오겠다고. 제빙기는 절대 주면 안 된다고. 절대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시청에서 온 사람에게 공문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살짝 욕지거리를 뱉는 입모양을 했다. 그리고 나를 보며, “오늘 아침에 급하게 떨어진 공문이에요. 아직 발송 처리가 안 된 모양이에요. 곧 갈 거예요. 기간 내에 제빙기를 모두 회수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저는 공문보다 빠르게 다니고 있는 거구요. 지금 근처 카페에서 제빙기 다섯 대를 회수했어요. 여기가 여섯 번째고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래요. 사장님 오신데요.”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다 잠시,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그런데 정말 제빙기 얼음으로 북극이 복원되나요?”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얼음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