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커피 사용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커피 이야기.
그러고 보니 카페 창업에 대한 일기를 쓰는데, 13편의 글을 쓰는 동안 커피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랍다. 그만큼 카페를 창업하는 데 커피 말고 생각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는 뜻이 아닐까.
카페를 창업한다고 말한 이후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주 듣게 되는 질문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어디에 차리세요?’라는 질문. 두 번째는 ‘언제 오픈하세요?’ 그리고 세 번째는 ‘어떤 커피 사용하세요?’이다.
아마도 누군가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가장 궁금한 내용인가 보다. 모두들 하나같이 세 가지 질문을 차례로 물어보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아아, 어디에 차릴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네. 그리고 언제 오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네네. 원두요? 원두도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네. 다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주절주절 대답하고 만다.
가볍게 주고받는 대화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외쳐버리면, 꼭 그렇게 해야 하는 압박감 같은 게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런 질문에 대해 대답은 피하고 싶다. 나는 그런 마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치꼬치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아무래도…’ 하고 예상하는 내용을 말하기도 하지만. 언제나 변동 가능성이 있음을 덧붙인다.
으음, 어떤 원두를 써야 좋을까. 사실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정해 놓은 게 있다. 필터 커피에 사용할 원두는 조금 다양하게 사용하면 좋겠다. 그리고 에스프레소에 사용할 메인 커피는 확실히 하나로 정하면 좋겠다.
메인 커피에 대한 나의 지론이 있다. 지론보다는 이렇게 하고 싶다는 쪽에 더 가깝지만. 카페를 대표하는 메인 커피는 손님과 소통이 되어야 한다고 할까(?).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자고로 한 카페의 메인 커피는 손님과 호흡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수면 아래에서 카페와 손님이 은근히 주고받는 메시지 같은 게,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커피를 가르쳐 주신 사장님께서는 이 점을 ‘손님을 은근하게 적응시킨다’고 말씀하셨다.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면 ‘어, 뭔가 낯선데. 맛있어’라는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반복되면 손님은 낯선 느낌을 익숙하게 느낀다.
익숙해졌다는 신호가 보이면, 사장님은 메인 커피에 낯선 요소를 하나씩 더했다. 이를테면 로스팅을 조금 더 밝게 하는 식이었다. 그러면 손님들은 또 ‘어, 또 뭔가 낯선데. 뭐지? 그런데 맛있어’라고 느낀다. 딱 그 정도만, 과하지 않게 낯선 요소를 더해갔다. 당시 사장님은 이 과정을 다수의 손님들을 대상으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주 집요하게 지속하셨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손님들이 익숙하게 느낄 특징이 있는 커피(예를 들면 농밀한 단맛이 느껴지는 커피, 또는 두텁고 진득한 단맛과 질감이 느껴지는 커피)에, 약간의 신맛 혹은 밝은 뉘앙스를 하나씩 더해가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손님들의 반응을 보면서 밝고 화사한 방향으로 메인 커피를 변화해 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어느 순간 손님들은 밝은 커피도 자연스럽게 드시고 있었다.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밝고 화사한 커피에 입맛이 들면, 프랜차이즈 커피 혹은 저가 커피의 단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고, 이게 곧 우리 카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나는 실제로 그 현장에서 이 과정을 지켜보았는데. 실제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는 커피의 색깔, 손님의 반응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당시 이를 보고 내가 크게 느낀 점은 이렇게 커피를 만들어야 하는구나, 그래야 경쟁력이 생기는구나, 같은 점이 아니었다. 아아, 이렇게 커피로도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구나. 서로가 커피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누지 않지만, 어떤 미묘한 대화가 흐르고 있구나. 커피로 손님과 주고받는 메시지 같은 게 있구나. 그걸 배웠다.
이런 과정은 아무래도 작고 미묘한 지점에서 한 칸씩 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가, 다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을 들여다보려면 어떤 원두가 필요할까.
내가 생각하기에, 무조건 맛있거나, 무조건 비싼 원두가 필요한 건 아니다. 가성비 좋은 원두도 아니다. 그저 중배전 정도로 로스팅 한 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어떤 특정 원두가 필요한 게 아니라 로스터가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잘 이해하고 있는 로스터. 그의 성향이 어떻고, 커피를 어떻게 다루고, 어떤 생두를 좋아하고, 어떤 관점에서 로스팅을 하는지. 얼마나 잘 소통이 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로스터를 선택하는 게 조금 더 맞을 것 같다.
말하자면 로스터의 생각과 태도 같은 부분에 공감하는 지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부분이 나는 원두를 납품받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이렇게 세세하게 파악하고 원두를 구매하는 건 쉽지는 않다. 로스터의 현실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하나하나 보여주는 공급처도 드물다. 게다가 이런 식의 손님은 피곤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원하는 색깔의 원두를 테스트해서 선택하고, 거기에 맞게 추출하면 되는데 말이지. 그렇게 내려도 손님은 맛있게 커피를 마실 테니까.
극단적이게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저 이런 수치가 찍힌 원두를 만들고, 이런 레시피로 추출을 하면 된다. 그게 부족하면 도구나, 머신 또는 필터를 바꾸면 된다. 그렇게 원두를 사용하면 되는 일이니, 어렵게 고민할 건 없다는 방식도 있다.
말하자면 A + B = C 라는 사고방식이다. 시스템과 효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필요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런 쪽보다 ‘왜 C가 좋은 것인지’ 묻고 따지는 쪽을 좋아하는 비효율 타입이라, 피곤하게 이런 고민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간편하고 빠르고 정확한 게 우선인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납득되지 않겠지만. 어디까지나 손님에게 빠르고 간편하게 커피를 내어주고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사용할 재료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이 되는 것 같다. 그저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어쨌든 커피의 맛이나 성질(이라 할까요)은 전반적으로 손님과 소통이 되는 선에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가 있는 쪽입니다. 그렇기에 한쪽이 일방적이지 않기를, 그런 균형감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종종 드는 비유입니다만. 너무 말이 많은 커피는 조심하고, 적당히 나긋하게 할 말만 간단히 전하는 커피면 좋겠다고. 준비하는 카페에서는 그런 커피를 만들면 좋겠습니다만. 가능하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