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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자유로운 영혼

11월 5일 토요일.

숙모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해서 가족, 친지

모두 병문안을 갔다.

무슨 수술 인지도 모르고 입원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갔더니 담석 제거술을 했단다.

다들 무슨 암수술인 줄 알고 왔다가

약간 허무한 듯 한 느낌도 있었지만

오히려 암 수술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또 오래간만에 친지들 얼굴도 보고 기분도 좋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숙모 얼굴이 무척 밝아 보였다는 것이다.


11월 12일 토요일.

아침에 꿈이 너무 뒤숭숭했다.

숙모가 꿈에서 계속 도와달라고 했는데

도와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다 결국 숙모가 허연 흰무리들 속에

서서 이제 됐다고 손을 저었다.

너무 슬퍼서 잠이 깼는데 꿈 내용이

안 좋아서 이따 점심때 전화드려야지

하고 생각을 하였다.

그때의 시간이 08시 39분.

그리고 두 시간 후 연락이 왔다.

숙모가 돌아가셨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에서는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어렸을 때 나를 키워주신 숙모님이었다.

아들처럼 생각하셔서 나 또한 부모처럼

숙모를 모셨다.

그런 숙모가 돌아가신 것이다.

의료사고로 뜻하지 않게 돌아가신 것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셨다.

15일 화요일 발인할 때까지 잠 한 숨

안 자고 장례를 치렀다.

살아생전에 못 해드린 것과

앞으로 해드리려고 했던 것들을

다 합친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내 모든 것을 다 쏟아 장례를 치른 것이다.

장례를 치르면서 느낀 것이

장례란 문화가 생긴 것이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도 있지만 뒤에 남아 있는

산 자들을 위한 문화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 가족, 친지가

모여 서로가 슬픔을 나누다 보니

소식을 들은 첫날 하늘이 무너질 것 같던

슬픔이 발인을 마치고 나니

견딜 수 있는 슬픔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사람들이 하도 쉬라고

말려서 결국 빈소 한편에서 쉬는 척하면서

진료기록부를 살펴보았다.

숙모가 돌아가신 시간이.

08시 39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숙모가 죽음의 강을 건너실 때

내 꿈에 들리신 것이었다.

난 소리 없이 대성통곡을 했다.


11월 15일 화요일.

발인을 하고 숙모를 납골당에 모셨다.

아직도 믿기지 않고 매 순간순간

숙모 생각이 나지만

그래도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뵈었던 숙모의 밝게 웃는 얼굴과

돌아가실 때 내 꿈에 나오셨던 것을

생각하며 견디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름달을 보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크고

밝게 빛나는 달을 본 적이 없었다.

숙모가 가시는 길을 밝은 달빛이

비춰줄 거란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숙모 가시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란 생각에

얼굴에는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숙모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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