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당신은 덤탱이에 당첨되셨습니다!
종종 커뮤니티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와 함께 재래시장vs대형마트 이슈가 떠오르곤 한다. 온라인에서는 '재래시장은 더이상 경쟁력이 없으며, 대형마트를 의무적으로 쉬게하는 것은 시장 상인의 표심을 염두에 둔 정치권의 탁상공론'정도의 의견이 대세로 굳어진 듯 하다. 사실 나도 비슷한 의견을 견지하고 있다.
여기서 재래시장이 잘했니 못했니를 따지려는건 아니다. 다만 재래시장이 더이상 경쟁력이 없는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주차장, 위생, 현금위주, 좁은통로, 불친절함 등 재래시장의 불편한 점이야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그저 재래시장에서 감내해야할 불편한 점에 그친다면, '줏대없는 가격'은 근본적으로 재래시장을 믿지 못할 곳으로 만든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래시장에 찾아간 연예인이 개인기한번 보여주고 가격을 깎는 장면은 이젠 하나의 클리셰처럼 되어버렸다. 확실히 세상 물정에 빠삭한 이에게 재래시장은 말만 잘하면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일지 모른다.
그렇게 싸게 물건을 내어준 상인들의 마음은 훈훈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살림살이도 그만큼 훈훈해졌을까? 자원봉사가 꿈이 아닌 이상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마진을 남기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그 타겟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뜨내기 손님이다.
사과를 싸게 샀다는 말은 누군가는 사과를 비싸게 샀다는 뜻이며, 감을 싸게 샀다는 말은 배추를 비싸게 샀다는 뜻이다. 말만 잘하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을 장점이랍시고 내세우는 재래시장은 아무말 없으면 덤탱이쓰는 각자도생의 장이나 다름없다.
나는 흥정을 잘해서 물건값을 깎는 모습이 정말이지 하나도 정겹지 않다. 판매자를 귀찮게 만들어 물건값을 깎는 모습도, 손실을 다른 손님으로부터 메꾸려는 모습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덤탱이 쓰는 모습도 모두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주말에는 소파를 사기 위해 아현동에 있는 가구단지에 갔다. 발 가는데로 들어간 가구점에서 카달로그를 살펴보는데 한 소파가 눈에 띄었다. 잘빠진 디자인 컷 아래에는 <정가 1,200,000원> 이라고 적혀있었다. 속으로 뜨악 하며 역시 예쁜건 비싸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인 아저씨는 덤덤하게 '60만원에 주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을 휘감은 생각은, 반값에 득템할 수 있다는 기쁨보다 진짜 가격을 모른다는 공포였다. 정보의 비대칭이 주는 공포는 더이상 주인 아저씨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싸게 샀다'와 '덤탱이 썼다'는 같은 뜻이다. 파는 사람은 30만원 짜리를 60만원에 팔았고, 사는 사람은 120만원 짜리를 60만원에 샀으니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하며 끝낼 문제는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케아 가서 투명하게 정가 주고 사는게 속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