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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꿈은해녀 Jun 04. 2021

"엄마, 나는 내가 제일 불쌍해"

이기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밤잠을 못 이뤄 스트레스로 편도가 붓고 탈모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기주의자가 되기로 다짐했다. 

 


나는 누구보다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고, 좋은 사람 소리만 듣고 싶었다는 게 맞을 거 같다. 

오죽하면 내 20년 동안의 아이디가 "상냥한 00 씨" 였을까. 개나 줘버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어 내 삶을 돌아보니, 

속마음을 억누르며 베풀었던 내 배려와 양보가 조금씩 내 마음을 상처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열심히 일하던 마음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지금에서야 더 이상은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이기주의자라 하지만, 남들에 대한 예의가 없는 몰지각한 사람이 되겠다는 건 아니다. 


더 이상 참으며,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면서 까지 착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나의 배려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나의 애씀을 타인들은 알지 못한다. 

내가 목소리를 내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외부로 소리를 내게 된 계기는 가족이다.


막내 남동생에 대한 애정이 너무나 크신 어머니는 항상 전전긍긍이다.

이미 사십이 넘은 동생네에 대한 걱정, 푸념이 한가득이다. 

얼마 전까지 동생네 일로 가족들과 빈번하게 통화하며 의견을 대립할 때가 많았다. 

동생네도 힘들겠다 싶고

어머니는 매번 속상해하시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도 속상하고... 끝이 없다. 

가족들이 아무리 애를 쓰며, 안타까워해도 당사자들이 처리해야 할 사항들이니

 나의 머리 아픔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어머니의 걱정도 어머니 본인이 끊어내지 않는 이상 

딸인 내가 덜어 드릴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오히려 내가 어머니에 대한 깊은 관심을 끊어내기로 했다. 



집안의 갈등이 생길 때 어머니나 언니가 하는 푸념에 대해 나한테는 더 이상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어차피 도움 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길게 생각하지 않도록 가족들과도 거리 두기를 하며,

크게 신경안 쓰기로 한 것이다.


"엄마, 지금 00(동생)이 세상 불쌍하고, 안타깝지...... 있잖아... 나는 내가 세상에 제일 불쌍해. 

 00 이는 집도 있고 직업도 좋고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나는 직업도 불안하고 남편도 자식도 아무것도 없어. 

그 걱정할 시간이면 홀로 남을 내 걱정을 더 해줘" 

엄마가 생각하시는 기준으로 보면 분명 난 불쌍하다.  하지만 난 혼자인 삶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


--


그다음 목소리를 낸 것이, 정말 대하기 어려운 남인 직장동료 A에게였다. 


앞자리에 앉은 A는 목소리가 굉장히 크다.  

해당 직원이 고객과 상담을 해야 하는 직종이라 가뜩이나 말도 많이 하는데  

마주 보고 앉은자리 옆 뒤가 다 막혀있어 목소리가 벽을 치고 뇌에 쨍하고 박히는 기분이 든다. 

주변의 상담직원들도 그 직원이 말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귀도 막으며 안 들려 다시 말해주세요를 몇 번이나 말하며 통화를 하고 있다.

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깜짝깜짝 놀라 심장을 부여잡고, 온갖 방법으로 작게 소통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으나, 근 8년째 고쳐지지 않고 있다. 


이 A에게 지금까지의 배려 섞인 상냥한 부탁어조가 아니라, 

정색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는  A가 다른 동료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A의 친구가 지금까지 잘 지내다가 일 년 전의 서운했던 이야기를 꺼냈다는데, 

A는 그게 음흉스럽다는 것이다. 

일 년 동안이나 숨기고 자신을 볼 때마다 그렇게 생각을 했을 거 아니냐며 본인은 뒤끝이 없기 때문에 바로 말하고 해결하는 스타일이다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 듣는 순간, 8년 동안 고민을 해가며 정말 어렵게 부탁의 말을 건넸으나 

변하지 않은 A의 모습과 매일매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관계가 어긋날까 강하게 말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층간소음을 못 견뎌 이사 나가는 마음으로 

퇴사를 생각하고 스트레스를 받던 고민은 이제 끝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당신 때문에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을 상세히 하나하나 짚어가며 주의를 요해달라 말하고 나니 뭔가 해결해 낸 듯 후련하다. 

그 직원도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현재는 조용하고 만족스럽다.



가족도 사랑하고 친구도 소중하고 일도 중요하지만, 집중의 대상은 '나'이다. 

나는 나를 먼저 배려하고 내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나를 제일 사랑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위한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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