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통의삶

집 구하기 (in 독일)

#하이델베르크

by 바코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곤 한다. 나는 독일에서 1년 8개월을 지내면서 여섯 번이나 거처를 옮겼으니, 유독 집을 많이 옮겨 다닌 편이었다. 도시를 옮겨 다니기도 했고, 같은 도시 내에서 이동하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대략 5개월 정도를 지내고 나서,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이다-오버 슈타인’이라는 마을에서 생활비를 절약하면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었다. 이 마을은 독일에서 유일하게 원석을 가공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 아니라 한국인과 마주치기 힘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냈을 때는 독일 가족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독일 문화와 독일어를 빨리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었다. 하지만 학업을 위해 하이델베르크로 떠나야 했기 때문에, 만나자 곧 이별이었다.

‘이다-오버 슈타인’에서 하이델베르크에서 지낼 집을 구했을 때의 일이다. 유학생활은 하나부터 열까지 온통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의 땅에서 집 구하기는 제일 난도가 높고도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집주인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며 계약서를 작성할 때면, 늘 등줄기에 땀이 줄줄 나곤 했다.


독일 가족과 함께 살면서 독일 친구들도 여럿 사귀게 되었는데, 독일 친구들은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선뜻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그것이 개인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고 타인의 삶에 유난스럽게 간섭하지 않는 독일 문화이기도 했다. 한 지붕 아래 살면서 나의 생활 또는 나에 대해서 시시콜콜 물어보지 않고,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처음에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나태하고 의존적인 생활이 될 수도 있었던 생활이 조금 더 독립적인 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함께 살았던 독일 가족들에게 하이델베르크로 떠나기로 결심했다며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하다가 어려운 것이 있으면 도움을 청하라는 가족들의 말에 집을 직접 좀 구해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집을 구하는 당시에 비자 문제와 학업, 거주, 경제적인 어려움이 함께 겹친 때라 그들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용기를 내어 스스로 하나하나 풀어나가기로 결심했다.


독일에서 한국인들이 자주 들여다보는 한국인 커뮤니티를 보면, 동양인은 집 구하기가 힘들다는 말들이 있었다. 더욱이 하이델베르크는 대학도시인만큼 외국 유학생과 독일 현지 대학생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방 구하기가 힘든 도시 중에 하나였다. 내가 머물렀던 이다 오버 슈타인에서 하이델베르크 까지는 기차를 타고 2시간 반쯤 가야 하는 곳이어서 처음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 집에서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독일에서는 ‘WG’라고 하는데, 이는 거주자가 월세비용을 줄일 수 있어 대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거주형태 이기도 하다. 또 유학생의 경우에는 독일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국인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서 유익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나는 먼저 인터넷 사이트의 공고를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이메일을 보냈다. 하이델베르크는 대학도시인만큼 대학생과 유학생들이 몰려드는 곳이라 집이 부족한 상태라 답장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20군데 정도 이메일을 썼다. 그중에 세 군데에서 답장이 왔다. 집으로 와서 미팅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왔다 갔다 하는 기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세 군데의 집을 하루에 모두 방문해야 했다. 오전, 오후, 저녁에 각각 방문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하이델베르크의 어느 호스텔 1박 예약을 했다. 아침부터 일찍 움직이려면 전날 도착해야 했다. ‘이다-오버 슈타인’에서 배낭을 메고 하이델베르크를 향해 가는 기차 안에서 내내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우주에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기대했던 학업을 시작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야 했는데, 집을 구하러 가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사진으로 본 것처럼 괜찮은 집일까’

‘내 독일어 발음을 보고 독일 대학생들이 비웃으면 어떡하지’

‘갑자기 독일어가 하나도 한 들리면 어쩌지’

‘집은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앞으로 잘 될까’

‘아....’


KakaoTalk_20161017_181140030.jpg 2014 하이델베르크 by 바코

그렇게 불안함으로 꽉 찬 머릿속과 배낭 때문에 무거운 어깨와 긴장해서 지끈지끈 아픈 발을 겨우 이끌고 밤이 늦어서 겨우 하이델베르크 호스텔에 도착했다. 씻고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쓸데없는 걱정과 근심, 외로움에 시달려 피곤했지만 너무 피곤하니 잠이 들지 않았다. 한국이었으면 친구에게 전화해 수다를 떨면 간단하게 해소될 스트레스였지만, 타국에서 오는 고독감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웠다. 한국에서 기대한 유학생활의 환상과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달랐다. 유난히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밤이었다. 그렇게 자는 듯 마는 듯 밤은 깊어져 갔고, 새벽 일찍 호스텔을 나섰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길거리에는 각종 장식들로 화려했다. 하이델베르크 시내를 가로질러 골목골목을 걸으면서 주변에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새벽이라 많은 사람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강가를 따라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얘기하는 내내 웃는 얼굴로 내 얘기를 들어주었고,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내가 원하는 학업과 독일에서의 생활 속에서 많은 것들을 얻기를 바란다는 응원을 해주었다. 더욱 반가운 소식은 내가 그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면 자기들에게도 재미있는 추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며 그 자리에서 이사할 수 있는 날을 함께 의논해서 정했다. 짜릿한 성취감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대단히 큰 선물을 선사한 것은 아니었지만, 낯설어하는 나를 위해 먼저 마음을 열고 미소로 맞아준 그들이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외국인 유학생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적이 없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따뜻한 미소와 응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다음을 나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그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시트콤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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