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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코 Apr 03. 2018

한 번 열면 멈출 수 없는 소설,  망내인

 얼마 전 홍콩 작가 찬호께이가 쓴 망내인을 읽었다.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고, 책도 두꺼워 망설여졌지만 완독에 시도했다. 두꺼워서 책을 읽는 내내 손이 무거워 신경질이 나기도 했지만 흥미진진한 소재와 예상치 못한 전개는 그 무게감을 덜어주었다. 한 소녀의 자살 사건을 둘러싼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이 지금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또한 홍콩의 비극적인 한 가정의 가족사를 보니, 눈물이 나기도 했다. 소설이지만 분명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 분명했기에 더욱 와 닿았다.  



한 소녀의 자살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이기심과 허약함

 

 한 소녀가 자살했다. 소녀의 친언니는 동생이 자살을 했을 리가 없다며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을 찾아낸다. 그녀는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혼란을 느낀다. 자신이 알고 있던 동생의 모습과 동생의 주변인들이 생각하는 동생의 모습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범인을 찾아낸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수를 하려 하지만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그렇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서로를 모함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실수를 범한다. 나의 허약함을 타인을 이용해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자살은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한 사람을 자살에 이르게 한 범인도 분명 존재한다. 소설 속 자살을 한 소녀는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한다. 성추행을 당한 뒤 소녀는 마음이 괴로웠다. 괴로워하는 소녀에게 누군가 앙심을 품었다. 앙심을 품은 사람은 소녀가 성추행을 당하지도 않았는데, 일을 꾸며 한 남자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았다고 유명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다. 그 게시글은 순식간에 인기글로 급상승한다. 그 글을 보고 사람들은 소녀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물론 키보드 뒤에 숨어 손가락으로 말이다. 그것에 견디지 못한 소녀는 자살을 택했다.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을 아는 인간은 그것을 이용해 타인을 모함하고 못살게 군다. 확실한 사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키보드 뒤에서 손가락으로 생각 없이 욕설을 뱉어낸다. 한 사람의 정신에 폭행을 가하는 것이다. 인간은 점점 허약해지고 있다. 갈수록 개인주의화되어 가고 있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만한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이 소설 속 이야기는
TV를 틀면 바로 들려오는 현실 속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자기 본모습

"원래는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소신 있게
살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지금의 병든 사회에서는 교육이란 권위에 복종하고
주류에 편승하며 똑같은 상식과 능력을 갖춘
로봇이나 제조하고 있는 꼴이죠."
아이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청소년기에도 하루하루를 안간힘으로 살아내느라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이는 냉정하게 생각해보았다.
공주에 대한 아녜의 판단은 아마 틀림이 없을 것이다.
궈타이의 말에 따르면 공주는 장례식장에 시녀들 없이 혼자 왔다.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꾸미지 않고 자기 본모습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 망내인 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망'

 아침에 눈을 뜨면 마주하는 것이 사람보다는 기계가 되어버린 지도 꽤나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밤에 눈을 감기 전에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은 스스로 그물을 만들어 울타리를 쳐놓았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견준다. 모르고 싶은 사실도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시대다. 손가락 하나의 까딱거림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소식이 진짜인지 꾸며진 것인지는 구별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감당해내야 할 몫이다. SNS로 타인과의 소통은 빨라졌지만, 행복한 모습으로 치장되어 내면의 슬픔이 가려져있다. 서로가 주류에 편승되려 안감힘을 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삼삼오오 둘러앉아 각자의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소통하려고 만난 친구는 앞에 앉혀 놓고,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친구와 소통한다. 소통과 단절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망'안에서 아이러니한 관계들을 위태롭게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 속에서는 한 사람이 작정하고 네트워크 '망'에서 일을 꾸며놓으면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인생도 인터넷으로는 현실과 다르게 꾸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허약함의 민낯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일상을 깊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 : 찬호께이 | 출판 : 한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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