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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Nov 14. 2021

깜빡이, 세상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


1. 열과 화의 바다


 EBS 한국기행을 즐겨 봅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과 푸근한 정서를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꾸미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집니다. 소재가 고갈됐는지 최근에는 색깔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예쁘고 블링블링한 그림이 화면을 채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 이주자들이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시골살이의 행복을 강변합니다. 연출된 이미지 같기도 합니다. 부부 중심의 스토리텔링 역시 천편일률적입니다. 행복 하려면 꼭 부부가 함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가족 형태 혹은 행복의 조건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으로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래전 그 프로그램에서 어느 출연자가 한 말이 잊히질 않습니다. 진행자가 불편한 산속에서 외따로 사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젊어서는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되돌아보니까 나나 세상이나 너무 뜨거워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산으로 들어왔습니다. 나 하나라도 서늘하게 살면 세상 온도가 그만큼 내려가지 않을까 싶어서요.” 대충 이런 요지였습니다.


그가 말한 ‘뜨겁다’는 게 지구온난화처럼 물리적인 온도만을 뜻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열’도 문제입니다. 굳이 ‘사람과의 관계’라고 한 건 혼자 있을 때 열을 낼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열이 나려면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야 하고,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곳은 그곳이 어디든 마찰열이 발생합니다. 대도시처럼 인구가 밀집한 곳이라면 접촉이 더욱 잦고 마찰열 역시 더 높습니다.


곳곳에 ‘열기’가 넘치고 ‘화’가 뿜어져 나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도로에서, 뉴스 화면에서, 심지어 집에서 계속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됩니다. 버스와 전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무표정하거나 화가 난 얼굴입니다. 인터넷 댓글 창은 소통의 장이 아니라 내 안에 쌓인 화를 배설하는 쓰레기통이 된 지 오래입니다. 배달 앱에 남기는 별점 테러와 막말 리뷰는 갑질인 동시에 번지수를 잘못 짚은 분노의 표출입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통의 바다(고해, 苦海)라고 하지만 열(熱)과 화(火)의 바다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2. 머리카락이 빠지는 이유


앞서 출연자도 예전에 ‘치열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치열(熾烈)'은 불길같이 맹렬한 상태를 말합니다. 주로 ‘치열한 경쟁’ ‘치열하게 싸운다’는 말로 쓰입니다. ‘치열’이라는 말이 다반사로 쓰일 정도로 일상은 이미 싸움터입니다. ‘파이팅(fighting)’은 우리가 일상을 어떤 태도로 살아내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떤 모임이든 파이팅하자고 외칩니다. 기운을 북돋우려고 추임새처럼 쓴다지만, 어법에도 맞지 않는 이 말은 ‘어디 한 판 붙어 보자’ 다짐하고 ‘제대로 한 번 싸워봐라’ 부추기는 데서 비롯된 게 분명합니다. 전투에 임하는 자세입니다. 전쟁에 대충대충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일상을 전쟁처럼 살아내고 있으니, 열기가 얼마나 뜨거울지 짐작할 만합니다.


뜨거운 만큼 스트레스가 커집니다. 스트레스는 생존을 위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지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거나 만성화되면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육체와 정신 모두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큰 사고가 일어납니다.


화를 참지 못한 대가는 큽니다. 많은 사람이 홧김에 사고를 치고 분을 참지 못해 뉴스 주인공이 됩니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어색해지거나 때로 파탄 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욕지거리를 하고 백주 대로에서 드잡이합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자체로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누군가는 그 사건을 보고 또 열을 받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인간 군상(群像)의 머리 위에는 열과 화가 쌓여갑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편입니다. 긴장이 높아지거나 화가 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가 멍해집니다. 피로감이 쌓이면서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집니다, 집중력이 떨어져 일처리를 대면 대면하게 됩니다. 생태학에서는 어느 한 부분만 다치는 물리적 파괴보다 몸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가 더 치명적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없던 두통까지 더해지면서 이 말의 참뜻을 실감합니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도 화 때문입니다. 어려서부터 모발이 가늘긴 했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더 가늘어졌습니다. 지금은 정수리가 훤합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이런저런 부담이 커지던 40대 초반부터 탈모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몸에 열이 많아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 땀샘이 곧바로 반응합니다.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가 조금 높을라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게다가 감정조절이 서툴고 화를 지혜롭게 다스리지 못합니다. 소심한 탓에 밖으로 내지르지 못하다 보니 꾸역꾸역 쌓입니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내 안에서 생긴 열과 화는 자꾸 위로 올라갑니다. 열기는 내리고 찬 기운은 올려야 좋다는데, 반대로 갑니다*. 머리 꼭대기로 솟구친 열은 모공을 좁히다가 종내는 막아버립니다. 열이 많은 체질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짱배기는 점점 더 빈약해 집니다.


* 화강수승(火降水乘) : 위(머리)는 화기를 품고 있고 아래(신장)는 물의 찬 기운 품고 있다고 합니다. 머리에 있는 뜨거운 열은 아래로 내리고 신장 쪽 차가운 기운은 위로 올려야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손발은 따뜻하게 하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3. 세상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작은 실천 


화를 덜 내야 머리카락 빠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를 줄이자면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거나 막상 마주치더라도 못 본 척 넘어가야 합니다. 성격 개조는 쉽지 않습니다. 고약한 성질머리를 고쳐보겠다고 ‘몽글인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더디기만 합니다.


결국 화나는 상황을 피해야 합니다. 열과 화의 바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한국기행 출연자는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사람들과의 접촉면을 줄여 마찰열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겁니다. 나 역시 어색한 관계를 힘들어합니다. 성미에 맞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 금세 녹초가 됩니다. 훗날 시골로 가겠다는 건 불편한 상황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도망가려는 이유가 큽니다.


도피가 아니라 정면 대결을 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치열한 세상이라지만 모두가 같은 온도로 사는 건 아닙니다. 열과 화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편안한 낯빛과 세련된 매너로 주변을 환하게 만듭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들의 체온은 곳곳에 넘쳐나는 열기를 끌어 모아 춥고 외로운 곳에 배달합니다. 물과 공기가 대류를 통해 지구 온도를 조절하듯 그들의 체온은 우리 시대에 팽배한 열의 불균형을 바로잡습니다.


정면으로 맞서기는커녕 여차하면 산골로 내뺄 궁리만 한다지만 세상이 덜 뜨거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좀 더 예의 있게 행동하면 누구든 화낼 일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이유 없이 화를 내거나 굳은 표정 대신 이유 없이 웃거나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다면 세상은 좀 더 환해질 수 있습니다.


친절한 운전은 도시의 열을 내리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입니다. 매일 혹은 매주 꽤 오랫동안 운전 합니다. 도로위에서 마주치는 자동차의 표정은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파이팅! 넘칩니다. 굳이 교통사고 같은 물리적 충돌이 없어도 많은 사람이 다른 운전자 때문에 화를 냅니다. 창문을 열고 욕을 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사람이 다른 운전자를 화나게 만듭니다.


도시의 치열(熾烈)을 치열(治熱)*하는 데는 자동차 머리 위로 솟구치는 열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차로를 바꿀 때는 미리 깜빡이를 켜 양해를 구합니다. 다른 차로에 들어간 뒤에는 몇 초간 비상등을 켰다 끕니다. 감사 혹은 미안함의 표시입니다. 다른 차가 내 앞으로 들어오려고 깜빡이를 켜면 편안하게 끼어들 수 있도록 속도를 줄여 공간을 만들어 줍니다.


초보 운전자와 구급차는 도로에서 더 많이 배려 받아야 합니다. 설익은 땡감이라고 겁박하고 몰아붙이고 업수이여기는 대신 내가 초보일 때를 떠올립니다. 끼어들려는 차가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면 더 멀찍이 떨어집니다. 스티커는 안 붙였었어도 쩔쩔매는 엉덩이에서 초보 티가 팍팍 나는 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서 구급차가 오면 나 역시 비상등을 켜고 아예 한쪽에 멈춰 서서 지나갈 때까지 기다립니다. 내가 멈춰 선 시간은 몇 초밖에 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건지는 데는 충분합니다.


오늘도 운전을 하며 누군가를 열 받게 하거나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나로 인해 매일 매일 누군가의 탈모 속도가 늦춰지기를 소망합니다.


* 치열하다(熾烈) : 기세나 세력 따위가 불길같이 맹렬하다.

* 치열하다(治熱) : 병의 근원이 되는 열기를 다스리다.


- 까칠남의 몽글人 도전記 ↓

https://brunch.co.kr/@piano14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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