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렄이는 친구가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 속 나무와 닮았다고 선물로 보내준 행운목이었다.
그 나무 캐릭터의 이름인 '무'를 따고 행운의 영어 'Luck'를 합성해서 '무렄'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는데
이름처럼 무럭무럭 잘 자라줘서 우리 집 생명력 담당이 되었다.
'강'이는 무렄이보다 반년정도 먼저 온 아레카야자인데 그전 여름에 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마도 과습으로(초보식집사라 정확히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알 길이 없고) 무성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무참하게 떠나가던 와중에도 겨우 버티고 살아난 두 포기를 통풍이 잘 되는 화분으로 옮겨줬는데
더 고사되지는 않았지만 더 자라지도 않는 채로 계절을 세 번 넘기더니 드디어 새 싹을 냈다.
정말 다행이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래도 굽이굽이 돌아 바다에 도착하는 강처럼 잘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문득 우리 '애기'는 이름을 잘 못 지어준 것일까 하는 미안함과 후회가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착하지 못하는 생활에 식물조차 기를 엄두가 안 나다가 드디어 해가 잘 드는 작업실이 생긴 것이 기뻐 그나마 기르기 쉽다는 다육이를 그때 소심했던 내 마음만큼이나 작은, 그렇지만 가장 예뻤던 아이를 업어왔는데. 그 아이는 4년째 아이인 모습으로 버티고 있다.
잘 자라는 풀, 다시 살아난 풀, 버티고 있는 풀.
고작 세 화분인데도 어쩜 이렇게 사는 모습이 제각각인지.
돌보는 것은 무엇이든 이렇게 쉽지가 않은지.
그럼에도 나와 같이 살아주는 이 생명체들이 항상 고맙다.
왱왱대는 컴퓨터 옆자리에서 환기도 햇살도 다 썩 마음에 들지 않을 텐데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이렇게 보란 듯 새싹도 틔워내고.
야 너두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그래, 나도 힘내서 잘 버텨볼게! 라고 대답한다.
저마다 사는 모습은 다 다른 거니까.
어떻게든 살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오기도 하는 거니까.
지금처럼만 같이 잘 살자. 고마운 나의 풀친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