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해 봄 꽃이 만발할 때쯤 몸이 많이 아팠다.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이 두통 오한 몸살이 몰려와 한 일주일정도 꼬박 앓고 나오니
세상의 색이 온통 다 바뀌어 있었다.
유난히 길었던 겨울, 도저히 올 것 같지 않던 봄이 드디어 왔는데
내가 기다리던 봄의 모습에 나는 포함되어 있는 것 같지 않아
멋지고 빠르고 화려하게 지나가는 스크린 속 영화를 보는 것처럼
컴컴하고 좁은 객석에 앉아 가만히 보고만 있는 관객이 된 것처럼
행복한 영화인데도 슬픈 감상에 젖어 바라보게 되는 그런 심정으로 스쳐가는 봄을 바라봤었다.
올해도 벌써 이제 누군가 이 동네에 처음 놀러 온다면 굳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이 나무들이 벚꽃나무였는지조차 알 수 없게 연한 초록잎들로 뒤덮인 가로수들만 서 있다.
점점 빨라질 일만 남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영화는 뒤로하고
상영관을 나와서 감상문을 쓰고 있다.
나는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봄은 항상 나보다 먼저 지나가더라고.
그래도 내가 보았던 이 아름다운 시절이 언젠가 분명 다시 그리워질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