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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Apr 28. 2023

237. 계산대 앞에서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 라고 하기엔 예전에도 종종 잃어버렸다.

그것도 20대 초반에 지갑을 1년 동안 두 번이나 잃어버리곤 충격으로 한동안 지갑 없이 살던 때도 있었는데 항상 가방이나 옷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가며 돈과 카드를 꺼내 쓰다 도저히 불편해서 다시 지갑을 장만하고 그 뒤로는 쭉 폰과 함께 외출 시에 항상 지니고 다니고 있다.


이제는 핸드폰 안에 모든 것을  넣어 다닐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다시 잃어버릴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굳이 실체를 가진 물건으로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역시  쪽이 훨씬 편해서이다. 나에게 편리함이란 물리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힘이나 동선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듯하다.


오늘도 ○○페이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쉽고 빠르게 결제할 수 있다는 광고를 남의 나라 이야기 보듯 감상하였다. 그저 CF모델들의 늘씬하고 건강한 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였을 뿐 광고에서 보여주는 살짝 먼 거리에서도 터치 몇 번으로 몇 초 만에 결재되는 방식을 굳이 익히고 싶지는 않아 진다.


가방 안에 지갑을 찾고 카드를 꺼내 점원에게 건네 결재하는 과정에서 손과 팔이 들일 수고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작은 모니터 화면 너머에 있는 가상의 공간을 찾아 터치하기 위해 수정체와 손가락이 일을 한다. 그것이 빠를 수는 있겠지만 쉬운 것이라고는 과연. 20년이 넘게 반복해 온 동작보다 더 쉬울까?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낡고 항상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물건이지만 그 만질 수 있는 것이 주는 안정감과 세월로 다져진 익숙함을 포기할 수 없어 나는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할 것 같은데 그러니 부디 내 기억력이 숫자에 불과한 나이 따위에게 굴복하지 말고 좀 더 분발해 줬으면 좋겠다.   


나중에 생각났다.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던 포인트카드를 꺼내 적립하느라 정작 계산한 카드는 깜박하고 그냥 나와버렸던 것을.


산신령처럼 네 카드가 무엇이냐 물어봐 준 알바생 앞날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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