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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May 10. 2023

238. 인간적인 마무리




































오른손잡이어서 번번이 오른쪽이 아쉽게 잘린다.

왼쪽은 오른팔을 45 각도로 기울여 적당히 자르기 수월한 각을 유지한  가위질이 가능한 반면, 오른쪽은 오른팔을 거의 수직으로 세워야 도달할  있는 곳에 목표물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불편해지는  팔보다는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이리저리 다듬다 보면 어떻게든 왼쪽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양손잡이었다면 훨씬 가지런하게 자를 수 있을 텐데.

머리 한번 나란히 잘라보겠다고 평생 보조로 살아온 왼손을 훈련시킬 수도 없고.

아니지, 평생 보조라고 앞으로 계속 보조라는 법은 없잖아? 지금부터라도 훈련시켜 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용실을 가면 된다는 아주 확실한 방법은 아예 후보로도 떠오르지 않는다.

행동의 이유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어설프더라도 이리저리 내 맘대로 머리를 잘라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마치 성인이 됨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미술시간을 되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 하나뿐인 재료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가며 원하는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이 주는 쾌감과 스릴이 있다.

자를 때 서걱 거리는 촉감과 싹둑 잘리는 소리는 웬만한 힐링 사운드 못지않다. (무려 라이브이기까지 한!)


이렇게 다 좋은데 딱 하나 아쉬운 것이 그 부족한 마무리이지만

그마저도 그 덕분에 더 나아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남아있다.

과정에 공을 들였기 때문에 그 삐뚤빼뚤함마저 사랑스럽게 보인다.


이 긴 문장들을 한 단어로 요약해 봤다. 참으로 인간적인 마무리라고.


작년 여름 길이 맞추기에 무한도전을 하다 바리깡을 사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로 짧은 커트를 만들어버린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또 머리는 쑥쑥 자라 단발을 쳤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더 짧게 자르는 것은 여름을 위해 남겨두었다.


다음에 찾아올 즐거운 미술시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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