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글그림 Nov 15. 2023

265. 답이 있을 것인가











































 지브리의 작품 중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일 재밌게 봤다.


 다음으로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정도를 꼽을 수 있겠지만 토토로나 포뇨와 같은 작품은 유명세에 비하면 딱히 취향은 아니어서 이후 평이 안 좋았던 최근 작들은 따로 챙겨보지 않았었는데, 개봉 전까지 홍보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들려오는 각종 논란과 함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입소문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감독님조차 우려를 표했다는 그 신비주의 전략이 적어도 나에게는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 셈이지만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도 훨씬 많았던 것인지 당장 다음 주부터 작은 상영관에만 배정되어 있는 시간표가 나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극장으로 찾아가게 만들었다.


 두 가지가 가장 궁금했다.


 비 상업적인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도 아니고 지브리와 같은 거대 자본 애니메이션 회사가 그 구조적인 원칙을 깨트리지도 않았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만들면 난해하다는 평을 듣게 된 것인가와

업계의 한 획을 그으신 거장 감독님이 본인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으셨을까를 내 눈으로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



 극장은 연초에 보았던 슬램덩크 때와 사뭇 비교되게 대여섯 남짓의 관람객이 전부였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흥미 위주의 카타르시스를 분출시켜 주는 영화는 척추를 곧추 세우고 몸을 잔뜩 스크린 쪽으로 기울여 보게 만든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한껏 의자에 기댄 채 - 거의 파묻혀 - 이 생각 저 생각 떠돌아다니는 상념들과 함께 한 권의 시집을 읽듯이 보고 나왔다.

  

 좋은 작품이었다. 재밌다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돌아오는 길에 많은 질문들을 던져주는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 마음이 그렇다. 모든 것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게 된 지금 세상이 더 그렇게 만든 것도 있을 것이다. 아리송한 것을 스스로 애를 써 찾기보다 남이 찾아놓은 것을 쉽게 취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이것저것 검색해서 해석해 놓은 글과 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중고등학교 때 시구에 밑줄을 긋고 '이것은 나라를 잃은 설움' 따위를 빨간펜으로 적어대던 순간이 떠올랐다.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전부라고는 할 수 없는.


 대다수의 해석이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재료가 된 소스에만 집중해서 그것을 정답인 양 말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나도 이 작품에 대한 내 의견을 한 숟가락 얹고 싶어졌다.



 무엇을 만들던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어떤 작가든 자신의 직, 간접적인 경험으로 창작을 하고 상상이라는 것도 자신이 경험한 감각의 산물이다.

그중에는 있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논픽션 같은 것도 있지만 적어도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통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차용일 뿐 자신이 가진 소스들을 재조합 재창작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연결성을 찾아내게 하는 것에 그 소임을 가진다. 이를테면 모든 창작자는 알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이 누구를 반영한 것이고 어떤 사건은 무엇을 나타낸 것이다 등을 밝히는 작업은 이 알의 부모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작업도 어떤 의미에서는 가치가 있겠지만 그 알을 부화시켜 태어난 새가 날아가는 것까지 만날 수 있다면 더 멋진 일이지 않을까?



 나에게는 상징이 가지는 성격과 차용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 더 궁금해한다는 사실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 대다수 중에 한 사람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셨던 것일까를 보고 싶었듯이.


 그 두 번째 궁금증에 대한 답은 영화를 보고 나와 찾아본 정보들에서 정답 비슷한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 내용을 굳이 공유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답도 답안지의 답도. 우리가 본 것은 문제지가 아니라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 각자 자신만의 알을 그리고 그 알에서 태어난 새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별개로 영화에 새가 정말 많이 등장한다.

누군가 댓글에 이 영화가 보고 싶은데 내 친구는 새 공포증이 있어서 같이 못 보겠다...라고 한 글을 봤었는데

새가 점점 많이 나올 때마다 그 댓글이 생각나 속웃음이 났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주신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의 노고에 존경을 표하며 

그리고 이 영화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애써주신 모든 관계자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 담아 올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245. 안녕을 전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