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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글그림 May 18. 2024

스위스에서 만난 기적




파파고 앱이 사진 그대로도 번역해 준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았다.


<유럽> 가이드 북과 종이 지도만 들고 손짓발짓으로 헤매던 것을 첫 여행으로 몸에 새겼다 보니 아직도 이런 식의 신문물은 접할 때마다 새삼스럽다. 

더 이상 그림 없는 메뉴판에서 찍기로 주문을 하고 난생처음 보는 음식들에 도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불편이 사라진 것인지 낭만이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알게 된 편리함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호텔방 커피 머신 옆에는 캡슐과 설탕 사이 독일어가 가득 적힌 봉지 하나가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이것이 행여 각설탕이거나 스위스에만 있는 고체 커피일지도 몰라 손대지 않고 있었는데 파파고라면 이제 정체를 알 수 있겠구나, 신이 나 그 포장지를 바로 찍어보았다.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덕분에 빵 터진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달달한 쿠키였다.


*





영화제에서 지급해 준 바우처로 센터에서 식사와 간단한 디저트 등을 먹을 수 있었다.


이날은 쿠폰으로 초콜릿 아이스크림 하나와 당근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센터는 야외였고 날이 너무 더워서 호텔에서 먹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센터와 호텔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남짓이었지만, 다른 케이크들 중에 랩으로 싸져 있는 것도 봐서 혹시 케이크를 포장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포장해 달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내가 차선으로 선택한 문장은 “저는 이걸 호텔에 가서 먹고 싶습니다. 들고 갈 수 있을까요?” 였는데 

담당자는 당연히 문제없다고, 냉장고에서 금방 꺼냈으니 녹지 않을 거라고 답해줬다. 


그래, 지구 온난화도 걱정인데 포장지를 줄여야지, 스위스는 공기가 맑으니 10분 정도 이렇게 들고 가는 것쯤이야 문제없지! 하고 휴지로 대충 싸서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데 눈앞에 케이크가 너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배도 고프다. 

굳이 운반을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잃고 그냥 가면서 먹어버렸다.

이렇게 먹게 될 거였으면 그냥 센터에서 먹고 올걸... 약간의 후회를 하며 호텔에 도착해서 아이스크림을 열었는데.


뚜껑에 있어야 할 스푼이 없다.



나에게 이런 기적이.


한국이라면 황당했을 일이 스위스에서 라니 아주 낮은 확률로 나만 특별하게 당첨된 기적 같아 웃겼다. 

그리고 방에는 커피 스푼이 있었다.


작은 기적의 아이스크림도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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