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여행자는 주로 스위스 패스로 교통을 이용한다.
일수는 3,4,6,8,15일권으로 정해져 있고 기간 동안 버스, 기차, 배 등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에 딱 맞지 않는 사람들은 1일권인 세이버데이패스를 구매할 수도 있다.
세이버데이패스는 날짜를 미리 지정해서 사야 하고 임박해서 사면 비싸지만 한 달 전에 사면 저렴하다.
헌데 이건 모두 여행객들을 위한, 즉 하루에도 여러 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이라 그냥 한 도시에만 머물며 버스 몇 정거장 또는 기차 한두 구간 정도만 이용할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바덴에서는 호텔에서 발급해 준 도시 내 버스 무료 이용권이 있었지만, 추크의 2박 3일은 에어비엔비로 예약해서 따로 교통권이 필요했다.
첫째 날만 관광을 하고 둘째 날은 쉬다 마지막 날은 바로 공항으로 갈 계획이어서 아무래도 스위스 패스는 3일권도 맞지 않았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하루만 세이버데이패스를 끊고 나머지 표들은 필요할 때 따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사전에 예산을 짜려고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패스나 기차표에 대한 정보는 많은데 버스표에 대한 정보는 찾기가 어려웠다.
결국 버스비는 얼마인지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한 채 스위스에 도착했는데,
16년 전에 있던 버스 정류장의 버스표 발권기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한가한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혼자 기다리다 드디어 주민 한 분을 만났다.
혹시 버스표를 어떻게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어플을 이용하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충분해서, 나의 오래된 폰은 사진 찍기에도 용량이 부족해 지워버렸던 SBB 앱이 기차뿐만 아니라 다른 교통수단도 검색하고 결제할 수 있다는 것을 스위스를 떠나기 하루 전에 알게 되었다.
현금으로는 어떻게 사냐 하니 그럼 일단 버스를 타서 기사님에게 물어보란다.
스위스 사람들도 다들 시민 정기권을 이용하는지 현금으로는 표를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정시에 버스가 도착했다.
청년에 가까워 보이는 젊은 기사님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기사님은 친절했지만 영어는 잘 못하셔서 서로 이런저런 몸짓을 주고받은 끝에
버스 내에 설치된 패드에서(아마도 그 SBB 앱처럼 보였다.) 구매해 종이표로 뽑아주셨다.
이 과정에 약 3분이 소요됐다.
물론 한적한 마을이긴 했지만 지금까지 이용했던 모든 교통수단들이 정시에 도착했는데
내가 3분이나 지체시킨 것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시내는 10분 정도의 거리였는데 편도로 끊으면 3.3프랑이었고 1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했다.
만약 내가 볼 일을 40분 내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표 한 장이면 충분했겠지만 여기에 와서까지 시간에 쫓기고 싶지는 않아 넉넉하게 왕복할 수 있는 1일권을 끊으니 6.6프랑이 되었다.
역시 여행자는 될 수 있으면 패스를 사는 것이 좋다.
*
배는 한국에서 쉽게 탈 수 없던 교통수단이어서 선착장에 배가 시간 맞춰 들어오는 것도
승무원이 문을 열고 나와 배를 정착시키는 것도 다 신기하고 재밌었다.
바다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탁 트이는 마음과 시원하게 때려대는 바람도 다 좋았다.
하지만 배도 배 나름이다.
리기산에서 내려와 루체른까지 가는 거대 유람선은 사람들로 빽빽해 스위스 한복판에서 서울의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떠올리게 했다.
1시간이나 가야 하는데 가뜩이나 산을 타서 다리가 아파 어떻게든 앉아야겠다는 생각에
서울살이 20년 동안 단련된 스피드로 사람 사이를 잽싸게 비집고 들어가 배 중앙부의 널따란 평상 가운데 어정쩡하게 비어있는 자리를 간신히 차지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 틈에 양반다리를 한껏 오므리고 앉아 멀리 갑판 위에 다닥다닥 붙어 선 사람들 머리 너머로 스치듯 지나가는 건물과 호수를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눌러대던 카메라를 더 이상 꺼내 들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만히 눈을 붙였다.
루체른에 도착할 때까지 후덥지근한 배 안에서 한숨 푹 잘 자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