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기산 가는 길에 보이는 추크호.
(스위스 도시 Zug는 '추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실제 발음은 '추'가 아니라 '주흐ㅋ' 이런 식으로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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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열차를 타고 리기산에 갔다.
산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소문이 난 까닭인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동양인을 보기도 어려운 작은 도시에 있다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국말에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여왕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나의 첫 느낌이 그랬다. 이곳은 관광지이구나.
다시 스위스행이 결정되었을 때 이 두 가지를 꼭 해보고 싶었다.
하나는 16년 전에 갔었던 루체른을 다시 가보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살랑살랑 걸어보는 것이었다.
기껏 산맥으로 유명한 나라에 와서 그때도 시간에 쫓겨 촉박하게 스치듯 보고 내려갔던 것이 못내 아쉽게 남아있었다.
리기산이라면 짧은 일정과 부실한 체력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런 트래킹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일 것 같아 선택한 곳이었는데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아니 내가 예상한 트래킹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중국 호도협에서의 경험이 강렬했던 기준이었다.
나에게 트래킹이란 대자연에 파묻힌 한적한 오솔길을 때로는 아찔하고 아슬아슬한 도전으로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담는 자유였는데, 이곳은 파묻힌 곳이 아니라 탁 트인 산이었고 곳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시야는 어딜 둬도 장관이긴 하였지만 내 발로 직접 걸어가며 겪는 험난과 고됨의 과정 없이 도달한 정상의 풍경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는 그저 예쁨에 가까웠다.
그래도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면 원하는 조용한 자연과의 독대가 가능할 듯도 싶었으나 무릎이 도와주지 않았다. 다음 정거장까지 반도 채 가기 전에 신호를 보내오는 다리와 발바닥이 걱정되어 도로 올라와 벤치에 앉아 쉬면서 내려가는 기차를 기다렸다.
내가 바라는 트래킹은 몸과 시간을 더 준비시켜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스위스의 예쁨은 눈으로 잘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