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독일어와 프랑스어와 영어가 모두 공용이고 도시마다 주 사용언어가 다르다.
마트에 가며 같은 내용을 3개 국어로 빽빽하게 표기해 놓은 포장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판토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는 독일어를 주로 사용하는 바덴이란 도시에서 개최되고,
나를 포함한 타 지역 참가자들에게는 동시통역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제 스마트폰의 기본 기능으로도 탑재되고 있는 그런 AI 번역기가 아니라
동시통역사가 현장에서 번역해 주는 영어를 실시간으로 전해 듣는 수신기에 가까웠다.
해외 영화제에 참석해 본 것도 처음이고 동시통역 이어폰도 처음이었지만
티 내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와 자리에 앉았으나 아무리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버튼이고 다이얼이고 이리저리 열심히 만져봐도 도저히 작동을 하지 않아서 불량이구나 확신하며 살금살금 나가 다시 바꾸려고 하니 스탭이 이어폰을 좌우로 크게 벌리면 on/off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켜긴 했는데 난관의 연속이다.
제법 무거워서 귀의 힘만으로 끼고 있기에는 불편해 중간중간 계속 잡아줘야 했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어와 간신히 집중해야 반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를 동시에 듣다 보니 여기가 지금 영화제인지 듣기 평가 시험장인지...
모르는 언어를 두 가지 동시에 들으면 자장가 효과가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