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일이 많아졌다
지금은 '한티역 사거리'로 불리는 그곳의 롯데백화점에 있던 매장이 내가 일했던 '맛이 즐거운 곳'의 첫 번째 매장이었다. '한티역'이라는 지하철역이 생기기도 전이었던 터라 봉천동에 살던 나는 늘 선릉역에서 하차 후 매장까지 편도 15분 정도씩을 걸어 다니곤 했다.
매일이 재밌고, 흥미롭던 시절이었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은 패밀리레스토랑 시장을 주름잡으며 업계 1위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가던 중이었고, 차별화된 분위기와 갖가지 이벤트로 미디어에서도 노출이 잦은 편이었다. (최애 배우였던 심은하가 출연한 '청춘의 덫'을 통해 일하기 1년 전, 처음으로 본 기억이 있다. 어떤 곳인지 잘 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회사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점이 된 것은 'SK텔레콤'과의 제휴 종료였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장 거대한 통신사로 자리 잡고 있는 SK텔레콤과는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25%라는 높은 할인률의 제휴를 맺고 있었으나 한창 아쉬울 게 없던 회사는 SK텔레콤과의 할인 제휴를 종료했고, 그 후폭풍은 생각보다 컸다.
물론 이후 다시 제휴를 맺기도 했고, 다른 통신사 할인들도 시도하긴 했지만 시기적으로 이미 시장이 변하고 있을 때였다. '레인보우 클럽데이'로 기억하는 40%의 파격적인 할인까지 내세우며 다시 SK텔레콤과 손을 잡고 일하는 사람들의 뼈와 살을 갈았지만, 때마침 경쟁 'O'사의 무서운 성장세까지 더불어 굳건할 것만 같았던 최고의 자리가 위태로울 이 즈음 내가 사랑하던 회사는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바로 회사의 주인이 바뀐 것이다.
좋은 주인을 만났으면 좋았을 것을.. 새로 주인이 된 대기업은 '맛이 즐거운 곳'에서 '즐거움'을 모조리 빼기 시작했다. 자부심으로 여겼던 서비스 매뉴얼과 차별성 있는 메뉴들을 축소함은 물론, 갖가지 이벤트들도 최소화했다. 당시 세계적으로도 유명세를 떨치며 우리나라 'BAR' 문화를 선도했던 바텐더 플레어를 없애고, BAR의 특별함은 무시한 채 그저 음료 메뉴를 만드는 곳이라고만 치부하던 변화들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들이 시작될 무렵,
이제 오픈한 지 채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나의 첫 번째 매장이 안팎의 여러 사정들로 폐점을 하게 됐고,
나는 서울살이의 두 번째 집이었던 신림에서 거리가 가장 가까운 '여의도점'으로 전보 발령을 받게 됐다.
(실질적 거리는 사당점이 제일 가까웠으나 본사가 함께 있는 매장이라 내키지가 않았다)
그렇게 만난 '맛이 즐거운 곳'의 두 번째 매장,
새로운 동료들과 한창 매장에 적응을 해나갈 무렵,
당시 아카데미 기수로는 30기였던, 입사시기가 비슷한 2~3년 차의 Level 1 직원들과 함께 Level 2(캡틴)로 진급을 하게 됐다. 하지만 점차 우리만의 색깔과 자부심이 사라져 가는 회사에서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던 선배들의 대거 퇴사가 이어졌고(전국의 매장에서 동시다발로 이루어졌을 정도로 퇴사자가 많은 시기였다),
입사 3년 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중간관리자로서의 업무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됐다.
회사 안팎으로 분위기가 뒤숭숭하긴 했지만 나에겐 소중한 곳이었고, 지금 놓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곳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경쟁사는 무한대로 커지고 있었으며, 바뀌는 방침들이 혼란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맛이 즐거운 곳'이었으니..
여의도 한복판에서 2002년 월드컵을 즐기고, 불꽃축제와 벚꽃축제에 하루 13시간씩의 고된 근무를 해도 나름의 보람을 느끼며 회사 생활을 이어가던 이때,
서비스와 홀 경력 하나 없이 단지 '컬리너리 대회' 우승만으로 매니저 특진을 한 사람이 서비스 매니저로 발령을 받아 여의도점으로 오게 됐고, 두 번째 매장에서의 악몽이 그렇게 시작됐다.
기본적인 스케줄링조차 되지 않던 매니저는 홀 직원들의 스케줄 작성까지 캡틴인 나에게 시키기 시작했으며, 테이블 방문이나 고객만족도 체크는커녕 늘 BAR TOP에 앉아 커피나 마시는 게 일상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으니,
당시 '맛이 즐거운 곳'은 영업시간이 23시까지였고, 마감조를 많이 하던 나는 늘 23시 30분쯤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여느 날과 똑같이 퇴근하던 그날, 버스에서 내려 신림동 우리 집 골목으로 들어가려다 보니 골목 앞 편의점에 그 남자매니저의 차가 서있는 게 아닌가, 그 매니저의 집은 우리 집과 정반대 방향이었는데 말이다.
너무 놀라 못 본 척 지나치려던 나에게 헛소리를 시전 하던 그 매니저는 결국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자 다음날부터 회사에서 나에게 감정적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또 이런 거 참지 않지......
며칠이 지나고 점장과 키친매니저(같은 Level 3 매니저에서도 키친매니저가 상위 경력자이다)와 나,
이렇게 삼자대면을 요청했고, 그간의 일들을 모두 설명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P 매니저를 내보내실 거 아니면 제가 매장을 옮기겠습니다"
몇 주 뒤 인사 발령 공문이 사내 메일로 왔고, 결국엔 그 무능력한 매니저가 경기도의 다른 매장으로 이동을 하게 됐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몇 년 뒤, 같은 지점 내에서 각각 다른 매장의 점장으로 다시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었지..
물론 그때도 여전히 무능력한 인간이었지만...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유어마이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