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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Nov 27. 2023

팁을 받아도 되나요?

추억 속의 싸이월드도 활성화되기 전인 22년 전,

지금이야 서로의 맛집 경험들이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지만, 그때만 해도 포털사이트의 카페('Daum'의 '팸레카페'가 당시엔 가장 큰 소통의 장이었고, 영향력도 꽤 있는 편이었다) 외에는 이야기를 나눌 만한 이렇다 할 공간들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그 카페에 내가 일하고 있는 지점에 관한 이야기가 올라오면 괜히 더 반가울 정도로 한 때는 열심히 사람들의 얘기를 들여다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실제 근무 평가로 이어졌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바로 '맛이 즐거운 곳'의 홈페이지에 기록하는 '고객의 소리'.

'고객의 소리'에는 '칭찬하기'와 '꼬집기'가 있었는데, '꼬집기'에 담당 서버 이름으로 거론이라도 되는 날엔 매니저와의 면담이 필수일 정도였지만, '칭찬하기'에 닉네임이 올라오면 담당 서버 이름이 적힌 '칭찬카드'와 '골드핀'이 본사에서 매장으로 보내졌으며, 보통은 출근 전 전체미팅에서 담당 서버를 호명하여 '칭찬카드'를 전달하며 함께 축하를 건네는 게 일반적이었다. 본사에서 받은 '골드핀'은 유니폼의 멜빵에 달고 다녔었고, 한때는 멜빵에 달린 다양한 종류의 더 많은 '핀'들이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다행인지 유니폼을 입던 내내 '꼬집기' 글이 올라온 적은 없었다. '칭찬하기'는 그래도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당시 내가 입었던 유니폼, 주로 오른쪽에 있는 유니폼(W/W-테이블 담당)을 입었었으나 잠시 왼쪽에 있는 유니폼(SPG-고객맞이 담당)을 입고 사무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일이 조금은 더 익숙해질 무렵,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1호 단골고객이 생겼다.

나이는 7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님 고객이셨고, 이전에도 매장에 한두 번은 방문하셨던 적이 있으셨던 모양인데 아주 오랜만에 방문을 하셨던 그날, 내가 담당서버가 되었다. 

처음 뵈었던 날부터 기억에 남았던 점은 할아버님 혼자 매장을 방문하셨다는 것,

원하시는 대로 주문사항을 받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기도 했지만, 할아버님은 그날 추천해 드렸던 스테이크 세트가 아주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었다. 수프와 샐러드에 이어 메인 메뉴인 스테이크까지 정말 말끔히 다 드시고는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며 인자한 웃음을 남기고 떠나셨으니 말이다.


그리고 약 2주 뒤,

할아버님이 매장에 또 방문을 하셨다. 입구에서부터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 손녀딸 오늘도 있나? 맛있는 거 잘 알려주는데.. 손녀딸 있어?"

안내를 담당한 직원들이 살짝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이려던 찰나,

마침 근처를 지나다 할아버님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를 드리며 자리를 안내해 드리게 됐다.

자리에 앉으신 할아버님은 아까보다 더 반가운 목소리로,

"나 또 왔어~ 지난번에 그거 너무 맛있어서~"


이렇게 스물한 살의 나는 70대 할아버님 고객의 손녀딸이 되었다.

두 번째 만남에도 할아버님은 식사 후 재차 너무 고맙다는 인사를 또 남기시며 계산서 위에 10만 원짜리 수표를 내미셨고, 거스름돈으로 받으신 6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Tip tray'에 그냥 남기신 채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은 테이블 계산이 매뉴얼)

나는 인사를 건네며 뒤늦게 'Tip tray'를 발견하고 놀라며 따라나서자 할아버님께서는,

"우리 손녀딸 고마워서 주는 용돈이다, 또 올게~"

라고 하셨지만, 나는 이걸 받아도 되나 싶어 어안이 벙벙해졌다.

같이 인사를 건네던 당시 'Shift Leader'(반장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될 듯)는 고객이 주는 팁은 받아도 된다고 하면서 지금처럼 늘 진심으로 고객을 대하면 된다는 약간의 칭찬까지 덤으로 주기도 했다.


할아버님은 약속대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어김없이 '손녀딸'을 찾으며 등장하셨고,

한 두 달에 한 번쯤은 전처럼 큰 액수의 팁을 아끼지 않은 채 주고 가셨다.

(당시 정규직 직원이었던 내 한 달 월급이 1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제법 큰돈을 팁으로 받은 셈이었다)

근무하던 강남의 매장 근처에서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하시는 대표셨던 할아버님은 그렇게 내가 처음으로 일했던 매장의 '첫번째' 단골고객이 되셨다.



이후 매장의 사정상 여의도로 전보 발령을 받게 됐고,

할아버님께는 인사로 제대로 드리지 못한 채 매장을 옮긴 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는데..

여의도점으로 출근한 지 며칠이 지났을 무렵, 대치동에 있는 매장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허니님, 여기 할아버님 고객 한 분이 자꾸 허니님만 찾으면서 먹던 걸 달라고 하시는데요"

순간, 반가움과 울컥함에 드시던 메뉴를 알려주었고 제대로 남기지 못했던 인사말도 함께 건네기 위해 

비록 얼굴을 맞대며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짧은 통화로 아쉬움의 인사를 대신하게 됐다.

 

진짜 친손녀를 대하듯 만날 때마다 늘 반겨주시며 아껴주셨던 나의 1호 고객님,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정정하신 모습으로 그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며 지내시길 받았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바라본다.








<본문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깔끔한 녀석'님>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샬롬차이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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