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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Feb 06. 2024

'파란만장'의 시작, (1)

노동조합 사건을 겪으며 대전으로 매장을 옮겨야 했던 그즈음, '맛이 즐거운 곳'도 본격적인 과도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런치세트와 부시맨브레드를 앞세운 경쟁 'O'사의 무서운 성장세는 꺾일 줄을 모르고 있었고(과거엔 음료, 애피타이저, 메인메뉴, 디저트가 전부 하나의 금액으로 제공되는 일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소스 그릇에 담겨 나가던 할라피뇨에도 추가 요금을 받던 시절이었다), 주춤하던 뷔페식 레스토랑까지 다시금 각광을 받으며 'V'사의 추격도 만만치가 않을 때였다.

런치나 디너 시간, 혹은 주말이면 늘 있는 길었던 웨이팅 시간이 어느 날부턴가 줄기 시작했고, 웨이팅 자체가 없는 날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맛이 즐거운 곳'에서의 나의 세 번째 매장이었던 '대전유성점'은 대전 1호 매장이었던 '대전둔산점'의 성공에 힘입어 기대를 안고 오픈했던 대전의 두 번째 매장이었다. 당시 유성온천 일대의 상권이 본격적으로 쇠퇴되기 시작할 무렵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맛이 즐거운 곳'인데~' 하는 생각으로 12월의 어느 날 호기롭게 문을 열었다.


보통 '맛이 즐거운 곳'의 매장 한 곳엔 4명의 매니저팀이 근무를 한다.

General Manager(점장), Kitchen Manager(키친매니저), Service Manager(서비스매니저), BAR&SPG Manager(바&안내매니저)로 구성된 매니저팀이 매장의 운영에 관한 전반전인 사항들을 부서별로 관리했으며, 매장의 규모에 따라 대형 매장에선 BAR와 SPG Manager가 구분되기도 했었다.

이랬던 '맛이 즐거운 곳'이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몇몇 매장에서는 이 매니저팀의 숫자조차 줄기 시작했다.


호기롭게 문을 열었던 나의 세 번째 매장은 12월과 졸업 시즌의 성수기를 무사히 보내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갖게 했으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믿을 수 없는 여유로움과 만나게 된다. 

그러는 동안 함께 일했던 처음의 점장님을 포함한 여러 매니저팀이 바뀌었고, 나만 터줏대감처럼 굳건히 매장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후 매출 규모에 따라 매니저팀이 더 축소되면서 결국 매장엔 점장, 키친매니저, 서비스매니저 이렇게 단 세 명만이 남게 됐다.

즈음 매니저 연차가 쌓였던 나는 키친 매니저를 게 됐고, 대구 출신의 순하디 순한 남자매니저가 낯선 대전에서 서비스매니저의 역할을 하게 됐으며, 대전의 첫 번째 매장에서 오랜 매니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 우리 팀의 점장이 되었다.


전에 없던 경험들의 조합이어서였을까..

하지만 단지 그렇다고만 하기엔 매뉴얼보다 감정이 앞선 결정과 지시를 따라야 하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매뉴얼을 앞세운 꾸준한 피드백이라면 매장의 관리자로서 총책임자인 점장의 지시를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주 비워졌던 자리와 때때로 내지르던 고함과 욕설(물론 나한테 1:1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비상식적 농담과 기분이 태도가 되던 일상들이 늘 머리를 아프게 했다.

매장에 매니저팀이 뿐이다 보니 명이 쉬는 날엔 자연스레 남은 명이 근무를 하게 됐고, 통상적으로 식자재 입고 관리에 책임이 있는 키친매니저가 주로 오픈 업무를 맡다 보니 서비스매니저가 쉬는 날엔 점장이 마감매니저의 역할을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매니저가 휴무였던 어느 날, 그저 무난하게 하루가 지나는 것만 같았다.

당시 오픈매니저는 출근시간이 오전 7시였고, 물론 매뉴얼 상으로는 저녁 영업시간 전에 퇴근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실제 퇴근시간은 빨라야 20시쯤이었다. 그땐 무슨 책임감들과 열정이 넘쳤는지 휴식시간도 제대로 없던 매니저팀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근무가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날도 저녁 영업의 한창 시간까지 매장을 둘러보다 퇴근을 하려던 무렵, 점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김매니저, 이거 수량이 이게 맞아?"

점장의 손에 들린 'Daily Inventory sheet'에는 '무전기'가 적혀 있었다.

식자재야 입출고 확인이 늘 당연시되는 매일의 필수업무였고, 대부분의 기물류는 월별로 재고조사를 한다. 

하지만 몇 가지 품목을 두고 매일 마감 시 수량 확인을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무전기였다.

당시 안내 파트에서 전날 재고로 적힌 무전기의 숫자는 열 개였고, 마감매니저의 사인까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느낌으로 그걸 세어 보았는지 무전기의 실제 숫자가 아홉 개인 걸 확인하고는 나에게 되묻는 것이었다. (무전기 재고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함께 일하는 몇 달 동안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나의 스케줄은 고정적으로 오픈이었고, 더군다나 키친 파트를 맡고 있다 보니 무전기의 일별 재고 숫자까지는 내가 매일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 개가 혹시 다른 곳에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비어있는 한 개가 다른 곳에 있을 리는 없었다. 서비스매니저면서 늘 마감을 담당하던 우리의 순하디 순한 그 남자매니저는 무전기 숫자 한 개가 뭐 그리 대수냐 싶어 실재고 확인도 없이 아마 습관처럼 사인을 했을 게 뻔한 일이었다.

"됐어, 류매니저한테 전화해! 어제 열 개가 분명 있었다고 사인했으니 그게 맞으면 오늘 누가 썼는지만 보면 되겠지"

점장 앞에서 나는 휴무인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제 열 개가 분명히 있었다는 대답을 서비스매니저가 할 수 없다는 것도 당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서비스매니저에게 점장은 지금 당장 찾아내던가, 해결하던가, 라면서 소리를 쳤고, 휴무를 맞아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있던 서비스매니저는 그 통화를 마치는 순간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시각에 대구에서 대전으로 올라오기 위해,

지금 함께 일하는 우리의 수장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아는 그에게 어쩌면 이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어서>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베베킴아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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