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을 앞세운 꾸준한 피드백이라면 매장의 관리자로서 총책임자인 점장의 지시를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주 비워졌던 자리와 때때로 내지르던 고함과 욕설(물론 나한테 1:1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비상식적 농담과 기분이 태도가 되던 일상들이 늘 머리를 아프게 했다.
매장에 매니저팀이 셋 뿐이다 보니 한 명이 쉬는 날엔 자연스레 남은 두 명이 근무를 하게 됐고, 통상적으로 식자재 입고 관리에 책임이 있는 키친매니저가 주로 오픈 업무를 맡다 보니 서비스매니저가 쉬는 날엔 점장이 마감매니저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비스매니저가 휴무였던 어느 날, 그저 무난하게 하루가 지나는 것만 같았다.
당시 오픈매니저는 출근시간이 오전 7시였고, 물론 매뉴얼 상으로는 저녁 영업시간 전에 퇴근을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실제 퇴근시간은 빨라야 20시쯤이었다. 그땐 무슨 책임감들과 열정이 넘쳤는지 휴식시간도 제대로 없던 매니저팀은 하루 12시간 이상의 근무가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날도 저녁 영업의 한창 시간까지 매장을 둘러보다 퇴근을 하려던 무렵, 점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김매니저, 이거 수량이 이게 맞아?"
점장의 손에 들린 'Daily Inventory sheet'에는 '무전기'가 적혀 있었다.
식자재야 입출고 확인이 늘 당연시되는 매일의 필수업무였고, 대부분의 기물류는 월별로 재고조사를 한다.
하지만 몇 가지 품목을 두고 매일 마감 시 수량 확인을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가지가 무전기였다.
당시 안내 파트에서 전날 재고로 적힌 무전기의 숫자는 열 개였고, 마감매니저의 사인까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무슨 느낌으로 그걸 세어 보았는지 무전기의 실제 숫자가 아홉 개인 걸 확인하고는 나에게 되묻는 것이었다. (무전기 재고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함께 일하는 몇 달 동안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나의 스케줄은 고정적으로 오픈이었고, 더군다나 키친 파트를 맡고 있다 보니 무전기의 일별 재고 숫자까지는 내가 매일 관심을 가질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한 개가 혹시 다른 곳에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비어있는 한 개가 다른 곳에 있을 리는 없었다. 서비스매니저면서 늘 마감을 담당하던 우리의 순하디 순한 그 남자매니저는 무전기 숫자 한 개가 뭐 그리 대수냐 싶어 실재고 확인도 없이 아마 습관처럼 사인을 했을 게 뻔한 일이었다.
"됐어, 류매니저한테 전화해! 어제 열 개가 분명 있었다고 사인했으니 그게 맞으면 오늘 누가 썼는지만 보면 되겠지"
점장 앞에서 나는 휴무인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제 열 개가 분명히 있었다는 대답을 서비스매니저가 할 수 없다는 것도 당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서비스매니저에게 점장은 지금 당장 찾아내던가, 해결하던가, 라면서 소리를 쳤고, 휴무를 맞아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있던 서비스매니저는 그 통화를 마치는 순간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 시각에 대구에서 대전으로 올라오기 위해,
지금 함께 일하는 우리의 수장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아는 그에게 어쩌면 이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어서>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베베킴아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