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나는 또 오픈 업무를 해야 했기에 마감시간(23시)까지 매장에 있을 수는 없었다.
설마 했던 서비스매니저는 정말 마감시간쯤 해서 매장에 도착을 했고, 직접 보진 못했지만 아마 한바탕 난리가 났었을 게 분명했다.
다음날은 점장이 쉬는 날이었고, 내가 오픈을 한 뒤 영업시간이 임박할 무렵, 서비스매니저가 출근을 했다.
체격도 남들에 비하면 많이 왜소한 편이었던 그는 그날따라 어깨가 더 축 처져 보였다.
"매니저님, 괜찮아요?"
"하..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요, 어제 휴무였는데 마치 일한 기분이에요.."
"그냥 다음부턴, '지금 대구라 못 간다. 제대로 확인 못한 부분은 잘못이다. 출근하는 대로 바로 잡겠다'라고 기죽지 말고 얘기해요, 매번 고생만 있는 대로 하고.."
"점장님이 뭐라 하시면 아무 말도 못 하겠어요.."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도 물론 잘 안다. 그리고 습관처럼 사인을 한 매니저도 사실 잘한 것은 없다.
하지만 점장이 상황마다 부리는 저 억지(무전기 한 개의 행방이 그 늦은 시각에 대구에서 대전까지 사람을 부를 일이란 말인가), 그게 나는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정말 참기 어려웠고 매번 빈틈없는 사람이 그러는 거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영업시간 내내 매장을 비우는 게 일이면서 어쩌다 기분에 따라 매장을 들쑤시며 사람마다 대하는 태도까지 다르니 더 인정할 수가 없었다.
불합리함에 대한 불만의 표정이 다 드러나는 내 성질이 더러워 그러는 건지 어쩌다 내가 하는 일이 본인 맘에 들지 않는 날이면 나에게 피드백을 주는 게 아니라 내 키친의 직원들에게 성질을 내기도 했다.
어느 날 우연히 'Broil(그릴에서 굽는 파트, 주로 스테이크류의 요리를 담당한다)' 파트의 여직원에게 메뉴를 트집 잡으며 쌍욕까지 하는 걸 듣는 순간, '이제 이 사람은 내 점장이 아니다'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또 마주하게 된 결정적인 하루,
크리스마스는 연말 성수기 중에서도 가장 바쁜 날로 꼽히는 날이다.
아무리 작은 매장이어도 천만 원 단위의 매출이 당연히 기록되고, 오픈부터 마감시간까지 대기가 끊이지 않는다. 점장부터 갓 입사한 아르바이트생까지 휴무는 꿈도 꿀 수 없는 날이며, 중간에 끼니라도 제대로 때우면 다행인 그런 날인 것이다.
키친매니저였던 나는 당연히 키친의 세팅을 완료하고 메뉴가 제공되기 전의 최종라인인 'EXPO'에서 티켓타임에 따른 최종 메뉴 확인과 전달을 담당하려 했다. 홀은 그곳의 담당자인 서비스매니저가 따로 있고, 전체를 아우르는 점장이라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게 영업준비가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다.
점장이 갑자기 매니저팀을 불렀다. 그래봤자 둘 뿐이지만,
"김매니저가 홀 보고, 류매니저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
이게 지금 말인지, 방귀인지.. 키친매니저한테 홀을 총괄하고 서비스매니저에게는 주차장 관리를 하라니..
물론 바쁜 날엔 주차장에도 차량 관리를 할 직원이 필요했지만, 그건 면허가 있는 직원들 중에 경험 있는 친구가 하면 될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즈음 우리의 작고 순한 서비스매니저는 감기 기운까지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 이틀 동안 나는 입구에서 무전기를 차고 이어셋을 낀 채 고객맞이와 웨이팅 정리, 홀 관리까지 하게 됐으며 서비스매니저는 종일 주차장을 지켜야 했고, 점장이 나의 키친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국 우리의 서비스매니저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다 치르고 아주 호된 몸살이 났다.
다른 건 문제가 없었다.
직원들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만 제대로 하면 될 일이었다.
작은 매장이었지만 오픈 때부터 홀의 구석구석 내손 하나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지켜오던 매장이었기에 직원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다만 단 한 가지의 이 문제가 때때로 매장의 분위기를 힘들게 했다.
여러 억지스러운 상황들과 지금이라면 당장 경찰을 불러도 시원치 않을 희롱적인 농담까지 나오자 이젠 직원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의 경영전략(TFT) 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말이 좋아 경영전략이지 당시 회사의 실적이 점점 부진해지자 영업점 평가를 통해 재직자들을 걸러낼(?) 수 있는 막강 파워를 가진 곳이었고, 이 팀의 팀장은 과거 내가 노동조합을 만들다 온 직원이라며 내 인사도 받지 않았던 중부지역의 지점장, 바로 그 사람이었다.
경영전략팀의 과장이 내게 전한 말은,
"매니저님, 신문고에 유성점에 관한 글이 올라왔어요, 대전에 내려가서 매니저님과 면담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결국은 터지고야 말았다.
매장의 직원 중에 한 명이 그동안의 부당함과 점장의 행태에 대한 투서를 올렸고, 매장은 발칵 뒤집혔다.
이러한 와중에도 우리의 점장은 신문고에 올린 글이 직원 스스로 쓴 게 아닐 거라며 나를 모함하기 시작했고, 투서를 한 직원을 매장 밖으로 따로 불러내 '시켜서 한 일'이라는 말을 끌어내려했지만, 우리의 똑똑한 직원은 그 자리에 녹음기를 가지고 나가 그 모든 말들을 녹음했으며, 그런 회유 따위로 이번 문제를 회피하려 했다는 사실까지 결국 나를 포함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이런 일들 가운데 나에게 연락을 했던 경영전략팀의 과장은 글의 진위 여부를 묻겠다며 대전까지 내려와 나와 면담을 했고, 나는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외에도 코치 직급의 직원 몇 명과 면담을 더 진행한 과장은 다시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하며 내게 말했다.
"다들 그동안 힘드셨겠네요, 다른 내용을 말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렇게 몇 주간의 한바탕 난리가 지나가고 본사에서는 점장의 '대기발령'이라는 인사공문이 내려왔다.
끝까지 억울함을 호소하며 남은 이들마저 이간질시키려 했던 점장은 아마 지금까지도 내가 시켜서 본인의 회사생활이 끝났다고 믿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았던 매장의 큰 소용돌이 후에 결국 남은 매니저팀은 나와 서비스매니저 단 둘 뿐이었으며, 지역을 총괄하던 지점장이 매장의 점장을 겸직하게 됐다.
이때 보냈던 몇 주간의 시간이 나에겐 '맛이 즐거운 곳'에서 가장 괴로운 날들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이곳이 내게 '즐거운 곳'만이 될 수는 없겠구나.. 하는 서글픔까지도 함께 밀려들고 있었다..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베베킴아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