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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Feb 28. 2024

아직은 '즐거웠으면' 해요,

입사 7년 차,

매니저 3년 차를 기념이라도 하듯 연초부터 괴로웠던 날들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진급 대상자가 되어 GMT(General Manager Training) 기간을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더욱이 이 즈음엔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팀의 숫자도 부족한 가운데 며칠씩이나 오산에 있는 연수원에 가서 교육까지 받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했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이 속한 그룹사의 정기인사는 매년 4월이었다.

대전의 매장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졸업시즌과 입학시즌을 무사히 치르고 나름은 매일매일 바쁜 하루들을 보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장들에 비하면 부진했던 매출 속에서도 매니저가 둘 뿐이었던 탓인지 그날도 정신없는 런치를 치르고 정리를 조금씩 해나가던 시각, 매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맛이 즐거운 곳, 프라이데이스 대전유성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니 매니저님이세요? 축하드려요~"

전화를 건 사람은 다른 영업점에서 일하고 있는 매니저 동기였다.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어? 아직 못 보셨나 보네, 점장 발령 나셨어요, 얼른 한 번 확인해 보세요"

"...... 네.. 확인해 볼게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히 전화를 끊고 확인한 사내메일엔 정기인사발령 공문이 와있었다.

그리고 매니저 중 점장으로 승진된 소수의 인원에 내 이름이 있었다. 아직 GMT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영업점은 대전에 세 번째로 오픈한 롯데백화점 내의 매장이었고, 그곳엔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일 년 동안 열심히 매장을 관리해 온, '맛이 즐거운 곳'에서 나랑 가장 친분이 두텁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점장이 이미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본사의 인사발령공문에는 그 점장이 유성점의 매니저로 강등 발령이 나있었고, 매니저였던 내가 그 매장에 점장으로 가게 됐으니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가 가장 문제였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이 된 여자 점장을 본 적도 없었지만(공문 상의 나이는 심지어 스물여섯이었다), 심신으로 많이 지쳐있는 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교육기간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매장 하나를 책임지는 사람이 돼버리다니.. 여러모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3월의 남은 며칠 동안 유성점에서의 업무를 정리하며 인수인계를 하고 영업점 이동을 준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치 프로스포츠의 팀들처럼 '트레이드' 대상이 된 롯데점의 점장은 내 마음이 불편할까 되려 나를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4월,

앞으로는 매장에서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새로운 매장에 출근을 했다.

맨 처음으로 매니저팀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파트별 업무를 파악함과 동시에 전에 있던 점장이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를 대번에 느낄 수가 있었다. 밖에서 보기엔 지금의 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을 거고, 어쩌면 인사발령의 결과가 이 모든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지난 일 년 동안 매니저팀이 본인 파트의 직원들과 1:1 면담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업무에 대한 고충을 들어본 적 없고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매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고, 점장은 그런 매니저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느니 매번 속으로 혼자 참았을 게 뻔했다. 

기본적인 스케줄링조차 되지 않았고, 인건비나 원재료비 등 기타 경비의 절감이나 관리에 대한 부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룹 공채에서 선발된 매니저는 '패밀리레스토랑 서비스'에 관해선 정말 책으로만 배우고 온 사람이었다. (이건 그들에 대한 뒷담화가 맞다. 앞에서도 매일 똑같은 피드백을 줬으니 앞담화라고 해야 하나..) 표면상으로 보기엔 깔끔한 정장 차려입고, 어쩌다 손님들에게 인사 좀 나누고, 말 잘 듣는 직원들의 스케줄은 알아서 잘 돌아갈 것처럼 보여 지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패밀리레스토랑은 보이는 것처럼 '예쁘기만'한 곳이 절대 아니다.


점장으로 첫 출근을 한 다음날부터 거의 하루에 13시간씩을 매장에 상주하며 온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나이 어린 점장이니 그렇다', '여자 점장이니 그렇다' 같은 헛소리들을 듣기 싫어 빡빡한 매뉴얼들을 예외 없이 지켜나갔고,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의 손이 많이 가는 매니저팀은 39일 만의 내 첫 휴무에도 결국 사고를 쳐 나를 매장으로 불러냈으며, 마녀 같던 지점장의 히스테리는 지점 내 점장들을 점점 더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직원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따라와 주는 편이었고, 전에 없던 피드백에 매니저팀은 몇 번의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저 잘하고만 싶던 시절이었다.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좋은 평가만 받고 싶었고,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버텨왔던 7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지 보이는 게 아닌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었다. 

이런 스스로의 압박이 앞으로의 나 자신을 얼마나 갉아먹을지도 모른 ......








<배경사진 출처-티스토리 '황제낙엽'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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