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7년 차,
매니저 3년 차를 기념이라도 하듯 연초부터 괴로웠던 날들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진급 대상자가 되어 GMT(General Manager Training) 기간을 함께 보내는 중이었다. 더욱이 이 즈음엔 매장을 관리하는 매니저팀의 숫자도 부족한 가운데 며칠씩이나 오산에 있는 연수원에 가서 교육까지 받느라 몸과 마음이 더 지치기도 했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이 속한 그룹사의 정기인사는 매년 4월이었다.
대전의 매장에서 세 번째로 맞이하는 졸업시즌과 입학시즌을 무사히 치르고 나름은 매일매일 바쁜 하루들을 보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매장들에 비하면 부진했던 매출 속에서도 매니저가 둘 뿐이었던 탓인지 그날도 정신없는 런치를 치르고 정리를 조금씩 해나가던 시각, 매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맛이 즐거운 곳, 프라이데이스 대전유성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허니 매니저님이세요? 축하드려요~"
전화를 건 사람은 다른 영업점에서 일하고 있는 매니저 동기였다.
"네...?? 무슨 일이 있나요?"
"어? 아직 못 보셨나 보네, 점장 발령 나셨어요, 얼른 한 번 확인해 보세요"
"...... 네.. 확인해 볼게요,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급히 전화를 끊고 확인한 사내메일엔 정기인사발령 공문이 와있었다.
그리고 매니저 중 점장으로 승진된 소수의 인원에 내 이름이 있었다. 아직 GMT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영업점은 대전에 세 번째로 오픈한 롯데백화점 내의 매장이었고, 그곳엔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일 년 동안 열심히 매장을 관리해 온, '맛이 즐거운 곳'에서 나랑 가장 친분이 두텁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점장이 이미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본사의 인사발령공문에는 그 점장이 유성점의 매니저로 강등 발령이 나있었고, 매니저였던 내가 그 매장에 점장으로 가게 됐으니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 '이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가 가장 문제였다.
이제 겨우 스물일곱이 된 여자 점장을 본 적도 없었지만(공문 상의 나이는 심지어 스물여섯이었다), 심신으로 많이 지쳐있는 때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교육기간도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매장 하나를 책임지는 사람이 돼버리다니.. 여러모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3월의 남은 며칠 동안 유성점에서의 업무를 정리하며 인수인계를 하고 영업점 이동을 준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마치 프로스포츠의 팀들처럼 '트레이드' 대상이 된 롯데점의 점장은 내 마음이 불편할까 되려 나를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4월,
앞으로는 매장에서의 모든 일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새로운 매장에 출근을 했다.
맨 처음으로 매니저팀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파트별 업무를 파악함과 동시에 전에 있던 점장이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를 대번에 느낄 수가 있었다. 밖에서 보기엔 지금의 이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을 거고, 어쩌면 인사발령의 결과가 이 모든 상황을 대변해 주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선 지난 일 년 동안 매니저팀이 본인 파트의 직원들과 1:1 면담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업무에 대한 고충을 들어본 적 없고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매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리가 없었고, 점장은 그런 매니저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느니 매번 속으로 혼자 참았을 게 뻔했다.
기본적인 스케줄링조차 되지 않았고, 인건비나 원재료비 등 기타 경비의 절감이나 관리에 대한 부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룹 공채에서 선발된 매니저는 '패밀리레스토랑 서비스'에 관해선 정말 책으로만 배우고 온 사람이었다. (이건 그들에 대한 뒷담화가 맞다. 앞에서도 매일 똑같은 피드백을 줬으니 앞담화라고 해야 하나..) 표면상으로 보기엔 깔끔한 정장 차려입고, 어쩌다 손님들에게 인사 좀 나누고, 말 잘 듣는 직원들의 스케줄은 알아서 잘 돌아갈 것처럼 보여 지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패밀리레스토랑은 보이는 것처럼 '예쁘기만'한 곳이 절대 아니다.
점장으로 첫 출근을 한 다음날부터 거의 하루에 13시간씩을 매장에 상주하며 온 신경을 썼다.
혹시라도 '나이 어린 점장이니 그렇다', '여자 점장이니 그렇다' 같은 헛소리들을 듣기 싫어 빡빡한 매뉴얼들을 예외 없이 지켜나갔고,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의 손이 많이 가는 매니저팀은 39일 만의 내 첫 휴무에도 결국 사고를 쳐 나를 매장으로 불러냈으며, 마녀 같던 지점장의 히스테리는 지점 내 점장들을 점점 더 괴롭히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지 직원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따라와 주는 편이었고, 전에 없던 피드백에 매니저팀은 몇 번의 눈물을 쏟기도 했다.
그저 잘하고만 싶던 시절이었다.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좋은 평가만 받고 싶었고,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버텨왔던 7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지 보이는 게 아닌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었다.
이런 스스로의 압박이 앞으로의 나 자신을 얼마나 갉아먹을지도 모른 채......
<배경사진 출처-티스토리 '황제낙엽'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