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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Apr 08. 2024

눈 떠보니 대학병원 응급실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이 성과들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적당히'라는 것을 알고, 꼭 매일 1등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를 왜 그렇게 괴롭히면서까지 '잘' 하려고만 했었는지......




잘하고 있다는 박수와 모두의 시샘이 영원히 공존할 수는 없었다.

비록 최고의 자리가 지속되진 않았지만 영업점의 관리와 운영 상태는 이후로도 준수한 편이었다.

다만 매일 그렇게 발버둥을 치기 위해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에조차 엄마 얼굴 한 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날도 정신없는 토요일을 보내고 늘 그렇듯 마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감 업무가 한창일 밤 10시쯤 퇴근 준비를 했다. (당시 실제 마감매니저는 밤 12시가 가까운 시간에나 퇴근을 할 수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빠른 시간이지만 중간 시간대 근무임을 감안하면 늘 늦은 퇴근시간이었다)

아직 롯데백화점 근처로 집을 옮기기 전이라 유성에서 출퇴근을 하는 중이었고, 유독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하다고 느껴지긴 했으나 '주말이라 그러겠거니' 하며 버스에 올랐다.

20여분 정도를 달려 동네에 도착을 했고, 정류장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채 5분 남짓이었지만 그마저도 힘겨울 정도로 걸음을 옮기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 아직은 지금처럼 디지털 도어록이 보급화되지 않았을 때라 빌라에 다다르며 집열쇠를 꺼냈고, 그렇게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올라 2층 집 손잡이에 열쇠를 꽂는 순간,

'풀썩'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곳은 을지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고, 정신은 몽롱했다.

그러던 와중에도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내일, 출근......"

옆에 있던 동생이 화를 냈다.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지금 출근 걱정할 때야? 언니 퇴근하면서 쓰러져서 119 불렀어! 밖에서 '쿵' 소리가 나는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문 열었더니 언니가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그런데 지금 출근 걱정이라니!"

동생은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정말 열쇠를 꽂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후의 상황들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생의 말로는 밖에서 제법 큰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고, 그 문밖엔 내가 쓰러져 있었으며, 거의 실신하다시피 한 상태라 아무리 불러도 대꾸나 반응조차 없었다고 한다. 놀란 동생은 바로 119를 불렀고, 그렇게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오게 된 상황이었다.


다행인지 몸에 어디 이상이 생겨 쓰러진 건 아니었다.

다만 어린 시절부터 있던 빈혈에 오랜 시간 동안 피로가 누적되고 영양실조 증상까지 있었으니, 몸 상태가 한계점에 다다라 버티지를 못하고 그야말로 기력이 쇠해져 바닥이 나버렸던 것..

만약 지금처럼 여동생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중이었다면 정말 아찔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계획에도 없던 이틀 정도의 휴가(휴식)를 보내게 됐고,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몸도 지쳐가고, 마음에 여유도 없었으며, 지금의 힘듦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지만, 이걸 놓을 생각을 이때도 차마 하지는 못했었다.




빡빡한 일상이 다시 반복되고,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던 어느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없고 김점장만 남아 이러다 내가 나를 잡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이런 갑작스러운 생각으로 시작된 다짐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20대에 시작해서 30대가 가까워진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내 청춘의 흔적들을 정리한다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의 결심을 '지금' 행하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오랜 심사숙고 끝에 나는 지점장에게 면담을 신청했고 퇴사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지점장의 대답은,

"김점장, 지금 그만두면 분명히 후회할 거야"

"네, 말씀드리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 하지만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하는 후회보다는 지금의 후회가 분명히 더 작습니다"


내 가장 젊은 날의 모든 걸 쏟아부었던 회사에서 맞이하는 열 번째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끼묘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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