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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May 03. 2024

에필로그

퇴사 의사를 밝힌 뒤에는 대표이사까지 지점장을 찾아와 나의 퇴사를 만류해 달라는 요청을 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고, 되려 퇴사를 결심하고 보니 '더 일찍 그만둘 걸 그랬나'하는 생각과 홀가분함이 공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시간을 줄 테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당부와 함께 실제 두 달의 휴직기간을 주기도 했다. 당시 대표이사나 지점장, 하물며 매장의 직원들까지도 이 잠깐의 휴식이 지나고 나면 내가 분명히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만큼 나는 나의 회사와 지금 나의 매장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준 두 달의 휴직기간이 다 끝나가기 일주일 전, 오랜만에 매장을 다시 찾았다.

마주치는 직원들마다 "점장님, 언제 다시 오세요?" 하며 물었지만 나는 이미 결심을 끝낸 상태였고,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지점장은 퇴직원을 쓰러 왔다는 말에 조금은 놀라는 눈치이기도 했다.

퇴직원에 사인을 하고 직원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누던 와중에도 잘 참아왔던 눈물이 

매장의 출입구를 나서며 뒤따라오던 직원들을 들여보내고 돌아서던 순간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2010년이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겨울의 어느 날,

스무 살의 끝자락에 입사하여 서른이 시작되던 무렵까지 나의 온 청춘을 함께 보냈던,

10년에 가까운 첫 직장생활을 이렇게 정리했다.




10년 만에 처음 가지는 휴식에 마음은 아주 오래 쉬고 싶었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젊었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나 잘 논다고 한 달이 지나면서부터는 좀이 쑤시기 시작했다. 백수라고 보냈던 한 달여의 시간도 실상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이 너무 많아 처리(?)하는 사이 어느새 지나가 버린 듯 했다.

퇴사를 할 때의 마음은 '다시는 동종업계엔 안 갈 거야'였지만 해오던 일이었고, 더군다나 잘할 수 있는 일이었던지라(그래야 그나마 돈을 더 받는다) 나는 또다시 커다란 매장에, 많은 메뉴를 두고, 더 많은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맛이 즐거운 곳'을 벗어난 뒤로 두 군데의 회사를 거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은 늘 비슷했다.

10년에 10년이 더 지나 20년이 되고, 그러는 동안 내 청춘을 다 쏟아부었던 '맛이 즐거운 곳'이 이젠 정말 즐겁지 않은 곳이 된 것 같아 슬퍼지기도 했으며, 여전히 군데군데 가시 돋친 말들에 어김없이 상처도 받으며 '내가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던 때에 예상과 계획에도 없던 전염병이 나타나 내 밥벌이를 빼앗아가 버렸고, 그렇게 눈만 감아도 훤히 그려지던 '나의 일'과 갑작스레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됐다.




'맛이 즐거운 곳'의 두 번째 매장에서 일하던 당시, 

대학 졸업반에서 실습을 나왔던 형들이 하던 얘기가 있었다. 

"내가 진짜 공사장에서도 일해 보고, 지하철 택배도 해보고, 웬만한 알바도 다 해봤는데 여기가 일등이야! 여긴 진짜 몸도 힘든데 마음은 더 힘들어!"

실제로 그랬다.

직원 시절엔 빡빡한 매뉴얼을 지키며 다양한 고객을 응대하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벅찼고,

관리자가 된 후에도 매일 불특정 다수를 만나며(우리의 상식 같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엔 생각보다 많이 있다), 수십 명의 직원을 관리해야 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사랑했던 건 매일 다른 경험과 생동감, 그리고 어쩌다 만나는 큰 감동의 순간들 때문이었다. 

식당 예능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처럼 음식을 사고파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20대, 30대를 지나 내가 살아오던 얘기를 하자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어쩌면 '나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일.

'허니'라고 불리던 순간들이 좋았고, 함께 울고 웃던 동료들이 좋았고, 이벤트가 가득했던 나의 일이 좋았으며, 때론 마음 같지 않은 상황에 눈물을 흘리던 날들도 있긴 했지만, 

매 순간 최선과 온 힘을 다했던 그때의 나는 어쩌면 가장 반짝이던 날들의 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지금의 밥벌이가 상상도 못 했던 분야로 바뀌긴 했지만(태어나 40대에 처음으로 앉아만 있는 일을 해보는 중이다), '맛이 즐거운 곳'에서 시작되어 내 청춘을 가득 채웠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여전히 내겐 가장 소중했던 순간들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배경사진 출처-네이버 블로그 '조코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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