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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Mar 11. 2024

'최고의 자리'는 올라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죠

매일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내면서도 점장 발령을 받은 지 6개월 여가 지날 무렵부터는 나름의 안정을 찾아가고도 있었다. 여전히 제대로 된 휴무를 갖기 어려웠고, 하루 한 끼의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처음의 봄날에 비하면 마음의 안정을 많이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에서는 매달 영업점 규모에 맞춰 본사에서 '목표 매출'을 잡아주곤 했었다.

절대적 매출 크기보다는 그 '목표달성률'이 얼마나 높은지가 매장 평가의 우선순위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매출달성률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고, 점장 발령을 받았던 해의 연말엔 백화점 판촉팀과의 연계가 좋은 결과를 내면서 가장 높은 달성률을 보이기도 했었다. 

매장의 분위기가 바뀌고, 수치적인 부분도 개선이 되자 본사에서는 '나의 매장'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업본부의 회의 시간에 대표이사가 '롯데대전점'을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 회의를 마친 각 지역의 지점장들이 점장들을 모아 놓고 하는 지점회의시간에 또 한 번 '롯데대전점'을 언급하면서 타 영업점들의 관심까지도 높아지고 있었으며, 그중에 몇몇 점장들은 매장으로 전화를 걸어 나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다.

'아~ 대표이사님이 롯데대전점 칭찬을 하도 하셨다고 해서요~'라는 반갑지 않은 말투는 덤이었다.


'맛이 즐거운 곳'에서는 매년 1월이면 전국 모든 매장의 점장들이 모이는 경영전략회의가 '오산연수원'에서 진행됐다. 3박 4일의 일정동안 끝이 없는 발표와 회의가 이어졌고, 공식일정 후의 숙소에선 다음날 일정을 위한 조별모임을 갖기도 했었다. 

내가 속한 조에서도 역시나 나는 가장 나이가 어린 점장이었고, 한창 칭찬이 자자하다던 매장의 책임자이니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는 식의 질문이 인사보다 먼저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우리 롯데대전점장님은 실제로 보니 되게 더 어리시네~"

"근데 아카데미는 몇 기신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데.."

"그니까요~ 우리 지점장님은 롯데대전점 좀 본받으라고 하던데, 얼마나 잘하고 계신 거예요, 하하!"

'그래 어디 한 번씩 떠들어 봐라'

그렇게 한바탕 질문 폭탄이 지나갔으니..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그렇죠, 어리죠, 지금이 1월이니 이제 스물여덟이네요~ 입사는 2000년 12월이고요, 2001년부터 해도 지금이 2008년이니 8년 차라고 하면 될까요? 그리고 다 똑같은 매뉴얼인데 저라고 뭐 다를 게 있으려고요, 그냥 매뉴얼을 잘 지키는 거죠~"

'친절한' 내 답변 뒤엔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정말 똥 씹은 표정들이었다. 우리 조의 십여 명에 가까운 인원 중에 나보다 입사가 빠른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으며, 그 꼰대 같은 질문을 쏟아내던 아저씨 점장들도 그 잘난 아카데미 교육을 나보다 전부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생각엔 내가 그저 몇 년 조금 일하고, 어쩌다 진급을 했으면서, 운 좋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들보다는 더 치열하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연초는 경영전략회의가 아니어도 여러모로 바쁜 시기였다.

영업점 매니저팀의 목표도 잘 세워야 하고, 여기저기 손댈 곳도 많았으며, 방학과 졸업시즌으로 이어지는 성수기였던지라 매일의 영업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때였다. 

그렇게 한창 졸업시즌을 보내던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맛이 즐거운 곳'의 아시아태평양지부 '램코'지부장이 갑작스레 매장을 방문하게 됐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인근 학교의 졸업식으로 매장은 다른 런치 때보다 더 정신이 없었으며 혼잡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는데, 이런 정신없음이 왜 인상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램코'지부장은 매장을 방문한 뒤 한국의 본사에 우리 영업점을 'Excellent Store'라며 엄지를 지켜 세웠다고 한다. 

'램코'지부장의 칭찬은 전보다 더 큰 이슈가 됐다.

다른 영업점 점장들의 전화가 전보다 더 많이 걸려왔고, 심지어 경쟁업체에서는 스카우트 제의가 오기도 했었다.


흔한 말로 영업점은 꽃길을 걷고 있었다.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매장을 유지하기 위한 의지와 열정은 멈출 줄을 몰랐고, 날이 정말 따뜻했던 두 번째 봄날에는 그 꽃길에 정점을 찍게 된다.


당시 '맛이 즐거운 곳'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벌스데이송 콘테스트'가 매년 펼쳐지곤 했다. 서울에 커다란 공연장을 빌려 전국 매장의 참가자들이 생일파티 이벤트에 쓰일 새로운 노래들을 퍼포먼스와 함께 경연하는 대회로 보통은 서비스매니저가 곡을 만들고 퍼포먼스 지도까지 하지만 나는 직원 시절부터 대회에 직접 몇 번이나 참가할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 당시 서비스매니저는 음악이라면 친밀감이 거의 없던 사람이었던지라 서로가 각자 잘하는 걸 지원하기로 했다.

멜로디가 쉬운 가스펠송의 가사를 바꿔 생일 노래를 만들고, 간단한 율동까지 직접 구성했다.

레스토랑의 마감은 거의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이라 참가하는 직원들이 연습을 하기엔 피곤할 법도 했지만 나는 이것마저도 이왕 하는 김에 잘하고 싶었다. 대회에 쓰일 유니폼에 직접 바느질을 하고, 반짝이실을 사서 이름도 하나하나 새겨 넣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함께 한 매니저도 늘 밝은 기운으로 사기를 북돋아 주고 있었고, 대회에 나갈 직원들은 나만큼이나 넘치는 열정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다. (하루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날, 쉬어갈 법도 했는데 너무 고달프게만 한 건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날,

모두가 최선을 다해 준비한 만큼 정말 좋은 결과를 내고 싶었다.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직원들을 믿으며 관객석에 자리를 잡고 다른 매장의 무대들을 먼저 보고 있었다. 내 눈에 예뻐 그런지 다른 매장의 무대는 사실 크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우리 매장의 무대만이 계속 기다려지던 가운데 드디어 등장!

밝은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서 우리의 직원들은 그 누구보다 반짝이고 있었고, 나는 마음이 뭉클해졌다.

무대를 마친 직원들은 그 어느 팀보다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으며, 무대보다 더 떨렸던 시상의 순간엔 결국 맨 마지막에 우리의 이름이 불려졌다. 

"2008년 벌스데이송 콘테스트 대상! 대상은...... '롯데대전점'입니다!"


빡센 점장 밑에서 정말 고생 많았던 우리 직원들, 다들 잘 지내고 있지? 내가 가장 사랑했던 레이첼을 곧 만나러 가야겠구나..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시기였다.

안팎으로도 평온했고, 더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점장인데 '이런 지금의 상황이 나에게 맞는 걸까'하는 스스로의 질문이 계속 됐다.

그렇다 보니 지금의 기준에서 더 흐트러지는 건 나 자신이 용납을 못하고 있었다.

매일을 스스로의 긴장에 살다 보니 마음 편히 온전하게 하루를 다 쉬는 날이 없었고, 매 순간 모든 걸 직접 확인하자니 하루의 한 끼도 제대로 먹기가 어려웠다. 오죽하면 직원식당 이모님이 양푼에 밥을 비벼 나를 쫓아다닌 적이 여러 번 있을 정도로...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 평균의 키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있지만, 그땐 다이어트를 하지 않아도 꿈의 몸무게인 40킬로대가 유지될 정도로 몸과 마음을 스스로 혹사시키던 때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었는데..

높이 쌓아 올린 게 무너질까 전전긍긍하던 스물여덟의 나는,

어쩌면 손에 쥔 것들을 더 일찍 놓아버리는 게 나를 위한 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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